[소설] 김지현의 에로틱 칵테일

(40) 결혼을 앞둔 그 남자의 연락

행복을 만드는 사람들 2011. 2. 19. 20:13

(40) 결혼을 앞둔 그 남자의 연락

 

근래 들어 H가 자꾸만 맥주 한 잔 하자고 졸래댔다. 메신저로 "술 한 잔 해야죠" 할 때는 "요새 너무 바쁘네. 좀 한가해지면 만나요" 하면서 자연스럽게 약속을 미뤘고 전화가 걸려올 때는 억지로 "어머, 왜 이제 전화했어요, 나 마악 약속이 잡혔는데~" 하면서 피했다.

그는 일적으로도 아주 많은 도움이 되는 남자고, 큰 키, 잘생긴 외모와 매끄러운 매너, 적절한 칭찬을 곁들일 줄 아는 섹시한 화법을 갖고 있으니 그와 술 마시는 게 즐겁지 않을 리 없다.

내가 그 남자와의 술자리를 피하는 이유는 그가 연초에 나와 잤던 남자기 때문이다. 그 겨울날 나는 '굶은 지' 오래된 명실공히 싱글이었고, 그는 가벼운 마음으로 여러 명의 여자를 만나고 있는 듯했다.

두 명이 마주 앉아서 소주 한 병, 또 한 병, 그리고 또 한 병을 마시고 나니 둘 다 취했다. 그가 말했다. "음, 오해는 하지 말아요. 나 오늘...... 정말 당신과 자고 싶어요."

나는 아무런 죄책감이나 도덕적 책임을 느낄 필요 없는, 게다가 굶은 지 오래된 명실공히 싱글이기 때문에 그리하여 그날 그 남자와 잤다. 그가 담배를 피우면서 다른 방에서 전화 통화를 하는 사이 나는 그가 제발 우리집에서 내 곁에서 잠들지 않았으면, 하고 바라면서 잠들었다. 그리고 눈을 떴을 때 그는 고맙게도 집에 가고 없었다.

오르가슴까지 가지는 못했지만 그는 여자를 존중하는 섹스를 알고 있었기 때문에 그 느낌만으로 충분히 가치 있는 섹스였다. 그러니까 한마디로 이건... 그냥 이따금씩 일어나는 '섹스 사고'에 다름없었다.

그리고 어제, 한참 회사 일로 바쁜 와중에 전화가 걸려왔다. "오늘 저녁에 술 한 잔 해요." "아, 오늘은 좀 곤란할 거 같은데." "이번주에 꼭 봐야 하는데. 결혼 전에 꼭 한 번 만나고 싶었는데...." "에, 결혼이라고요?"

그는 3주 뒤에 결혼한다고, 만나서 꼭 이야기하고 싶었단다. 저런, 결혼이라니. 축하의 말을 전하면서 이내 궁금해졌다. 우리는 1년에 두어 번 안부를 묻는 사이일 뿐인데, 결혼을 앞두고 그가 그렇게 애타게 나를 만나고 싶어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근 1년이 다 되어가는 그날의 섹스에 대해서 해명하고 싶은 걸까, 와이프가 될 그녀에게 우리의 섹스를 절대 말하지 말라고 당부하고 싶은 걸까, 총각일 때, 비교적 도덕적 죄책감이 덜할 때 섹스 한 번 더 하고 싶은 걸까, 혹 이제는 유부남이 될 테니 다시는 남녀 관계로 얽히지 말자는 다짐의 말이라도 하고 싶은 걸까?

"다음주에는 꼭 봐요"라고 말했지만 나는 그를 만나지 않을 예정이다. 어떤 마음에서든 한 번 섹스한 사람과는 만나지 않는 게 좋다. 다시 그와 자든 자지 않든 우리가 이미 한 번 같이 잤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으니까. 그게 결혼하는 그를 향한 나의 예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