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2) 친구의 애인과 자는 여자
"네게 할 말이 있어." 대학 동창 Y양이 아침부터 메신저로 말을 걸어왔다. "너 J와 종종 연락 하니?" J군은 대학 동기이자 나의 오래 전 남자친구다. 편안함이 우정인지 사랑인지 모호한 순간에 남녀로 만나 딱 1년 연애하다 헤어졌다.
울며불며 이별한 것도 아니요, 우리의 연애는 착각에서 비롯된 실수였다고 인정하고 서로의 길을 축복해주며 헤어진 마당에 다시 얼굴 못 볼 것도 없었다. 그리고 그를 마지막으로 만난 건 작년 봄 동기의 결혼식 날. "아니, 개인적으로 연락은 안 하지. 작년에 K 결혼식 때 봤잖아. 너 엄청 마신 날. 그런데 왜?"
그녀는 우는 표정의 이모티콘을 써가며 바로 '그날'의 일을 고백하기 시작했다. 그녀는 결혼식 뒤풀이에서 술을 많이 마셨다. 3년 만난 남자친구와 결혼 문제로 크게 싸운 게 문제였다. 이미 혀는 진즉에 풀려서 같은 말을 반복해서 떠들어대고 휘청거리면서도 굳이 더 마시겠다고 떼쓰는 그녀를 두고 나는 먼저 자리를 떴다. 그리고… 그날, 그녀는 내 옛 남자친구 J군과 잤다.
"눈을 떠보니까 모텔이더라구. J군이 옆에 있었고. 섹스는 하지 말자고 거의 빌다시피 했는데, 그러다가 또 필름이 끊겼고, 기억이 잘 안 나. 미안해. 그냥 너는 알고 있어야 할 것 같아서." 뭐라고? 그러니까 나의 친구가 내 옛 애인과 잤다고 지금 고백하고 있는 것이다.
이미 10년도 더 된 옛 애인이요, 끈덕진 미련을 갖고 있는 남자도 아니요, '그래, 정말 친한 친구끼리 남자쯤은 공유할 수 있지' 하면서 쿨하게 생각하려 해도 청순한 외모에 남자들에게 인기도 많았고 애인도 있는 그녀가 왜 하필이면 내 옛날 남자친구와 잤는지, 그리고 그걸 굳이 내게 왜 이야기하는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그녀가 내 옛 애인과 잤다는 사실보다 그녀의 나르시시즘에 화가 났다. 그녀는 즐기고 있는 것이다. 진심으로 싫었다면 어떻게든 섹스를 피할 수 있을 만큼의 연륜과 경험을 갖고 있는 서른 넘은 여자가 '술에 취했다, 기억이 안 난다'라니…. 내 몸에 욕망하는 남자가 좋아서, 혹은 친구의 옛 애인과 자는 상황이 섹시해서, 그녀는 싫다고 말하면서 사실 싫지 않았던 것이다.
차라리 그녀가 대놓고 "네 남자친구와 한 번쯤 자보고 싶었어"라고 말한다면 나는 오히려 웃으며 "그래서 어떻디, 생각보다 별로지 않았어?" 하며 농담 따먹기를 했을지도 모르겠다. 그녀는 비겁했다. 끝까지 자신의 비뚤어진 욕망에 대해서 말하지 않았다. 계속 J군을 탓했다. 어쩌면 별 사과할 일도 아닌 것을 1년이나 지난 지금 굳이 내게 이야기 꺼내는 것 역시 나르시시즘의 연장이 아닐까.
그녀는 내게 사과를 하고 싶었던 걸까, 아니면 자랑을 하고 싶었던 걸까. 나는 잘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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