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김지현의 에로틱 칵테일

(59) 내 여자의 과거, 어디까지 용서 하나요?

행복을 만드는 사람들 2011. 2. 20. 21:30

(59) 내 여자의 과거, 어디까지 용서 하나요?

 

얼마 전 여자친구와 같이 잤습니다. 전 처음이었고 여자친구도 제대로 사귄 남자친구가 없었기 때문에 제가 첫 남자인 줄 알았는데, 섹스하면서 경험이 있다고 고백하더군요. 아무렇지 않은 척했는데 자꾸 그 생각만 나고 여자친구에게 믿음도 사라지고 피하게 돼요. 너무 사랑하는 여자친구고 이런 스스로가 싫은데,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어요. < good17님>

미안하지만 당신의 사랑은 끝났다. 헤어져라. 처음까지는 아니라고 해도 나보다 섹스 경험이 없는 남자와 몇 번 연애를 해봤다. 그들도 초반에는 아무렇지 않아 했다. 오히려 경험이 많아서 잘 리드해준다고 좋아했던 남자도 있었다. 그러나 내가 처녀가 아니라는, 혹은 경험이 그들보다 많다는 사실은 그들 머릿속에 각인돼서 영원히 사라지지 않았다.

그리고 생각지도 못한 순간에 그 사실을 꺼내며 나를 괴롭히고 자신들 스스로 상처 입혔다. 아주 사소한 순간들이었다. 오르가슴을 못 느끼는 순간이면 "다른 남자는 나보다 잘하디?" 혹은 새로운 체위를 하고 난 뒤 "그 남자랑도 이거 해봤어?" 묻는 것은 그래도 양호하다.

심지어 의처증까지 생긴 남자친구도 있었다. 아는 남자들과 어울려 술을 마신다거나 전화 통화라도 하면 "그 남자지? 같이 잤던 사람이지?" 하면서 꼬치꼬치 캐묻더니 휴대폰 검사에 이메일 비밀번호까지 몰래 알아내 나를 오랫동안 괴롭혔다. 싸우고 할퀴고 변명하고 짜증내고 울고...... 그때마다 나는 도대체 왜 처녀인 척하지 않았을까, 왜 솔직하게 묻는 말에 대답했을까, 오랫동안 후회했다.

세상에 정말 착한 거짓말이 있다면 그건 과거에 대해서 대답해야 하는 순간일 것이다. 내게는 부끄러울 것도 자랑할 것도 없는 과거였다. 누군가를 사랑했고 그와 잤고 사랑이 식었고 이별하는 몇 번의 과정이 있었을 뿐이다. 그런 내 지난 시간들이 누군가를 상처 입힐 수 있다는 사실은 내게도 충격이었다.

당신의 마음도 충분히 이해한다. 여자친구를 너무 사랑하여 그녀의 과거까지 소유하고 싶은 마음. 그것을 공유하지 못했다는 것에 대해 스스로 화가 나서 그녀에게 분노를 이입하는 것이다. 그 욕심은 생각보다 커서 그녀에게 이물감을 느끼고 순결하지 못하다는 편견까지 갖게 될 것이다.

당신의 사랑은 그 순간부터 왜곡되기 시작한다. 사랑한다는 이유로 그녀에게 상처를 주게 될 것이다. 처음부터 몰랐다면 좋았을 것을 당신은 이미 알아버렸고 영원히 지워지지도 않을 것이다. 지금의 불쾌함과 불편함은 오랫동안 두 사람을 괴롭힐 것이다. 그녀의 아주 사소한 행동에 '내가 처음이 아니라서 그래' '역시 다른 남자와 잤던 여자야'라는 순간이 분명 온다.

지금은 슬프겠지만 이 이별은 당신에게든 그녀에게든 도움이 된다. 그녀는 아마 다시는 사랑하는 남자에게 과거를 고백하지 않을 것이고 당신은 이제 경험을 해봤으니 다음에 만난 연인이 처녀가 아니라도 지금보다는 덜 억울하고 조금은 더 성숙하게 그 사실을 받아들일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