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김지현의 에로틱 칵테일

(65) 그녀의 몸은 헤어진 첫남자를 사랑한다

행복을 만드는 사람들 2011. 2. 21. 18:10

(65) 그녀의 몸은 헤어진 첫남자를 사랑한다.

한 친구가 얼마 전 이별했다. 불발된 연애 횟수는 많지만 섹스로는 그가 첫 남자. 헤어지자는 말은 그녀가 먼저 했고 몇 번 붙잡던 남자는 결국 이별에 수긍했다. 이별 소식을 전해온 뒤 일주일쯤 되었을까. 그녀가 말했다. "나 사실 그 동안 그 남자한테 두 번이나 매달렸어." 뭐? 네가 먼저 헤어지자고 했잖아. 그 남자와 섹스해도 별로 좋은지 모르겠고, 사랑하긴 하는지도 모르겠다고 말한 건 바로 너였어! "모르겠어. 나도 그런 줄 알았는데 자꾸만 그가 그리워. 헤어지던 순간 '사랑한다'고 하던 그 남자의 눈빛이 지워지지 않아."

좋다, 남녀 간의 연애에서 홧김에 이별 통보하고 다시 화해하고 재결합하고...나 역시 이런 과정을 무수히 겪었다. 그럼 그 남자가 매달리는 그녀를 기다렸다는 듯이 받아들였을까. 그건 또 아니다. "널 사랑하지만 우린 너무 안 맞는 것 같다. 네 말대로 우리는 이별하는 게 맞다." 그 남자는 그렇게 두 번이나 그녀를 뿌리쳤다. 거의 모든 남자들은 여자를 매섭게 끊어내지 못한다. '괜찮은 남자'로 기억되고 싶은 그들의 욕심은 '널 사랑하긴 한다'는 멋진 말로 포장돼 여자에게 유야무야 미련을 남긴다. 정말 그녀를 사랑한다면? 남자들은 절대 그녀와 헤어지지 않는다. 나는 진심으로 그녀가 그에게 매달리지 않기를 바랐다. 그녀는 뒤늦게 그에 대한 사랑을 깨달았다고 말했지만 그녀의 연애 고민을 오랫동안 들어왔던 나로서는 그녀의 사랑이 벌써부터 식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문제는 그녀는 그를 사랑하지 않되, 그녀의 몸은 그를 사랑한다는 것이다. 일주일에 서너 번 꼭 껴안고 자주던 남자가 인생에서 한순간에 사라져버리는 상황을 아무렇지 않게 받아들일 수 있는 여자는 많지 않다. 아무에게도 보여주지 않던 속살을 큰맘 먹고 처음으로 드러낸 순간 부끄러울 겨를도 없이 포근하게 감싸주던 남자의 손길이 쉽게 잊힐 리가 없다. 별로 대단하지도 않은 몸매를 예쁘다, 부드럽다 하며 사랑스럽게 바라봐주는 시선도, 꾹꾹 숨겨두었던 은밀한 욕망이 무장 해제되던 순간, 스스로에게도 낯설던 자신의 신음 소리도. 때로는 몸의 그리움이 마치 사랑처럼 느껴진다. 11년 전의 나도 그랬다. 어두운 가로등불 밑에서 이미 헤어진 첫 남자가 내 몸을 파고들 때, 내가 그 익숙한 쾌감에 정신이 혼미해질 무렵, 그가 내 귓가에 속삭였다. "네 몸이 나를 못 잊는 걸, 나는 알아."

그 순간 나는 그를 밀쳐내고 집으로 뛰쳐들어왔다. 모든 건 명백했다. 나는 더 이상 그를 사랑하지 않았고, 그 역시 나와 다시 사랑할 생각이 없었다. 그는 내 몸을 이용해 섹스나 한 번 더 즐겨보고 싶었던 것이다. 익숙한 체온, 내 몸을 사랑해주던 기억 때문에 이미 싸늘하게 식어버린 남자에게 벗어나지 못하는 스스로가 그토록 미울 수가 없었다. 그날, 나는 두 번 이별했다. 몸만 남은 사랑의 뒤끝은 생각보다 훨씬 비참하다. 그리고 나는 진심으로 그녀가 그 경험을 하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