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김지현의 에로틱 칵테일

(67) 오르가슴보다 더 쾌감 주는 스킨십

행복을 만드는 사람들 2011. 2. 21. 18:14

(67) 오르가슴보다 더 쾌감 주는 스킨십

사실 나는 스킨십보다 섹스를 믿는 편이다.

아주 많은 여성들이 단순한 피스톤 운동에 불과한 섹스 자체보다는 달콤한 애무와 스킨십을 더 좋아한다는 얘기를 들으면 나는 "아직 제대로 된 섹스를 해보지 않았기 때문이야"라고 말하곤 했다.

그러나 근래 들어 "어쩌면 정말 스킨십이 더 짜릿할까?" 하는 생각이 스멀스멀 드는 건, 아마도 최근 시작한 댄스 교습 때문일지 모르겠다.

최근 나는 노처녀 히스테리의 전형을 보이고 있었다. 감정 기복이 심하고 "우울해"라는 말을 달고 다니고 작은 일에 쉽게 화를 냈다.

지인들은 진지하게 "남자를 끊어서 그래. 소개팅이라도 좀 해!"라고 충고했다.

아, 정말 테라피적인 섹스가 필요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딱히 마음이 가는 남자도 없고, 술김에 아무 남자와 섹스를 하고 나면 그 뒤끝이 얼마나 지저분한지 이제 충분히 안다. 그런 내게 친구가 은근히 추천한 게 살사였다.

춤도 별로 좋아하지 않고, 리듬감각도 없는 내가 살사라니!

그러나 끌려가다시피 몇 번 살사 레슨을 참여하고 나니 왜 친구가 내게 살사를 추라고 했는지 알 것 같았다.

살사에는 자연스러운 스킨십이 있다. 낯선 남자에게 시선을 고정시키고 그에게 내 허리와 손을 맡겨야 한다. 상대를 꼬시려는 음흉한 속내에서 비롯된 스킨십이 아니므로 찜찜할 것도 없고, 상대 역시 순수하게 춤을 즐기는 마음이므로 몸 사릴 것도 없다.

한 시간 내내 누군가와 밀착되어 함께 호흡을 하고 내 몸을 맡길 수 있다는 것, 낯선 남자들이 내 손을 부드럽게 잡아주고 안아주는 경험을 공식적으로 할 수 있다는 것은, 몇 분에 지나지 않는 오르가슴보다 더 은근하고 지속적인 쾌감을 주었다.

나만 이런 스킨십에 빠져 있는 게 아니다.

후배 중 하나는 틈만 나면 최근 시작한 개인 트레이닝을 자랑하느라 바쁘다. "처음에는 젊은 트레이너가 손을 덥썩덥썩 잡고, 자세 교정한다고 몸 이곳저곳을 잡아주는데 깜짝 놀라 몸을 사렸거든. 그런데 익숙해지니까 이게 은근한 즐거움이 있더라구." 수영을 배운다는 직장 동료도 수영강사의 스킨십이 수영의 또 다른 즐거움 중 하나라고 한다.

어쩌면 우리는 몸 좋고 섹시한 젊은 남자들의 몸에 호들갑떨며 좋아하는 아줌마가 되어가는 것일까.

아니다, 나는 우리의 스킨십에 대한 열망이 꽤 순수하고 합리적이라고 생각한다.

섹스하기 위해 필수적으로 거쳐야 하는 과정이 아닌 목적 자체의 스킨십. 따라서 몸과 몸이 맞닿는 감각에 가장 충실해질 수 있다. 거기에 일주일에 한 시간에서 서너 시간, 향수 냄새가 느껴질 만큼 가까이서 내 손을 마주 잡고 내 몸에 관심 가져주고 나에게 시선을 떼지 않고 웃어주는 남자라니!

어쩌면 우리 여자들이 남자와의 관계에서 가장 원하는 것이 이런 것이 아닐까.

 

김지현은? 기업PR, 프로모션, 공연, 출판 등의 콘텐츠 관련 일을 하는 30대 초반의 기획자. 섹스는 테라피요, 수면제요, 반짝 하는 황홀한 순간이요, 자취생의 고기반찬이라고 믿지만 가끔 욕구불만에 시달리며 평범한(?) 성생활을 영위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