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김지현의 에로틱 칵테일

(77) 여자끼리의 키스, 그 달콤함과 찜찜함

행복을 만드는 사람들 2011. 2. 21. 18:29

(77) 여자끼리의 키스, 그 달콤함과 찜찜함

"너 오늘 따라 왜 이렇게 섹시해 보이니, 특히 입술. 그래서 말인데, 우리 키스 한 번만 해볼래?"

이런 이야기를 남자한테 들으면 얼마나 행복했을까. 나에게 이 말을 하고 있는 건, 다름 아닌 여자, 그것도 알고 지낸 지 꽤 오래된 친구였다. 그리고 자타공인 그녀는 애인도 있는 이성애자요, 나 역시 여자와의 스킨십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 완벽한 이성애자였다. "싫어, 내가 왜 너랑 키스를 하니?" 하며 웃어넘기려는데 그녀는 "어떤 느낌인지 궁금하지 않아? 내가 너 키스 잘하는지 못 하는지 봐줄게" 하며 끈질기게 조르는 게 아닌가.

대학교 1학년 때 선배 언니가 자신의 첫 키스 상대가 여자였다고 고백하며 "나는 이성애자지만, 그렇게 부드러운 키스는 그 뒤로 한 번도 경험해본 적 없어"라고 말했을 때 약간의 환상이 생겼는지도 모르겠다.

그리하여 우리는 스무 살 때처럼 길 한복판에서 '첫 키스'를 시도해봤다. 술에 취하지 않았더라면 절대 하지 않았을 '짓'이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여자와의 키스가 훨씬 부드럽고 달달하다는 것은 진실인 것 같다. 남자들 특유의 까칠하고 거침 없는 혀에 익숙해 있던 나에게 새로운 경험이었다. 세심하면서 배려 깊은 움직임에, 심지어 향기조차 좋았다!

문제는 키스 그 다음 순간이었다. 우리의 키스는 마침 길 가던 술 취한 아저씨가 "아가씨들, 그건 나도 해줄 수 있는데~" 하며 치근덕거리는 바람에 유야무야 끝났는데, 집으로 돌아오는 택시 안에서 뭔가 찜찜하고 기분이 썩 유쾌하지 않은 것이다.

술도 잔뜩 취했겠다, 나는 문득 헤어진 옛날 애인들에게 일일이 전화를 걸었다. 한 명은 받았고, 두 명은 받지 않았다. 갑자기 그들과 간절히 통화하고 싶었던 건 이제 와서 생각해보면 내가 여전히 '여자'인지 확인하고 싶었던 것인지 모르겠다. 남자 때문에 설레고 남자와 섹스하고 싶어하고 남자 때문에 호르몬이 생성될 수 있는 '여자'.

나중에 들은 이야기지만 나와 키스한 친구 역시 나와 헤어진 직후 바로 남자친구를 불러내어서 밤새도록 섹스를 했다고 한다. 그녀 역시 나와의 키스 이후 성적 정체성에 도장을 찍고 싶었던 것이다. 혹은 나와의 키스를, 남자와의 섹스로 지워버리고 싶었을지도 모르겠다. 여자와의 키스, 그 자체는 나쁘지 않다. 남자들에게 질리고 짜증날 때 한 번쯤 해봐도 좋을 경험이다. 묘하게 혼란스럽고 찜찜한 뒤끝 이후 그녀와 나는 분명히 깨달았다. 우리는 바이도 아니고 게이도 아닌, 이성애자인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