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김지현의 에로틱 칵테일

(76) 감정 없는'쿨'한 하룻밤

행복을 만드는 사람들 2011. 2. 21. 18:27

(76) 감정 없는'쿨'한 하룻밤

간밤의 술자리에, 단 한 번 튕김 없이 달려나간 건 최근 그런 자리가 너무 필요했기 때문이다. 오랫동안 알고 지낸 언니와, 그녀의 유부남 친구와 그의 친구들 세 명. 낯선 사람들이었고, 두 번 다시 안 볼 사람들이었고, 남자들인 데다가 오빠들이었다!

그렇게 급조된 술자리에는 그중에 제일 '나은' 남자가 하나쯤은 있게 마련이다. 나는 날렵한 몸매와 거친 구렛나루와 커다란 코와 부리부리한 눈매와 힘줄이 불거진 손을 가진 돌싱에게 끌렸다. 게다가 건축사무소 사장이라는 것이나 외제차를 모는 것이나 자신이 어떻게 여자들에게 어필할 수 있는지도 알고 있다는 게 뻔했다.

어색함을 이기기 위해 급하게 마셔댄 술에 다들 취했고 이내 우리는 별 의미도 없는 이야기를 나누며 시시덕대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제 그만 일어나자'며 술자리를 끝낸 그가 아무 설명 없이 내 차에 올라타는 것이 아닌가!

영화 속에서 야한 장면만 나와도 오금이 저릴 정도로 심각한 욕구불만에 시달리는 요즘. 그가 차에 올라타는 순간, "하나님, 감사합니다!"를 외쳐야 했을지도 모른다. 그런데 그 순간 나는 순진한 처녀처럼 정색하며 말했다. "어머, 왜 남의 차에 타세요?"

그는 무안해하며 내 차에서 내렸고, 나는 그 밤 오래 묵은 욕구불만을 풀기는커녕 도대체 왜 그렇게 행동했을까 후회하며 새벽을 지새웠다. 남자를 오랫동안 쉬어서 감각이 뒤떨어진 것인지, 왠지 튕겨줘야 할 것 같은 20대 때 내숭이 아직 몸에 배어서인지, 사고 치고 나면 머리 쥐어뜯으며 며칠 동안 후회작렬이 미리 걱정되어서인지, 헤픈 여자로 낙인찍힐 일이 겁났던 것인지, 술에 너무 많이 취해서인지 아니면 덜 취해서인지....

어차피 다시 못 볼 사람들, 연락처도 주고받지 않은 사이에서 그들의 생각 따위 뭐가 중요한가. 내가 '감정'만 품지 않는다면 남녀 관계는 엄청나게 쿨해지고 쉬워진다. 내가 그를 사랑하지도, 좋아하지도, 결혼하고 싶거나 연애하고 싶지도 않은걸.

삼십대의 결혼 안 한 여자로서, 어디까지 튕기고 어디까지 시시덕대고 어디까지 즐기고 어디까지 선을 그어야 하는 걸까, 도대체 그 기준은 어디에 있는 걸까. 차라리 솔직해지는 게 낫지 않았을까.

나는 연애할 생각도 없고, 사랑은 하고 싶지만 당신은 내가 사랑할 만한 타입은 아니고, 그럼에도 당신이 지금 이 순간 매우 섹시하게 느껴지고 당신이라면 뒤끝도 없고 어색할 일도 없을 것 같다, 그러니까 나랑 잘래? 싫음 말고~!

앞으로 이런 기회가 또 온다면... 우스꽝스럽게 퉁기고 후회하지 말고, 꼭 그렇게 말해야지, 말해야지, 말해야지, 말해야지, 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