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김지현의 에로틱 칵테일

(75) 현모양처 그녀 "낯선 남자랑 하고 싶어"

행복을 만드는 사람들 2011. 2. 21. 18:26

(75) 현모양처 그녀 "낯선 남자랑 하고 싶어"

 

"언니, 언니가 예전에 쓴 칼럼, 여자는 감정이 없으면 섹스가 잘 땡기지 않는다는 거. 요새 별로 공감이 안 돼. 난 요새 정말 아무 감정 없이 섹스만 했으면 좋겠어."

고민상담하자며 술 사달라고 조르던 후배가 다짜고짜 말했다. 결혼을 약속한 애인과 3년째 만나는 그녀. 그녀의 애인도 알고 두 사람의 연애 과정도 다 알고 특히 자타공인 현모양처의 전형인 그녀의 위험천만한 발언에 술이 다 깼다.

"물론 그를 사랑하니까, 딱 맞는다는 느낌이나 오르가슴이 없더라도 이 남자와 자고 싶은 건 사실이긴 한데, 감정도 예전 같지 않고 연애의 한계도 보이고 이제 끝내야 하는 게 아닐까 싶으면서도 계속 이 남자와 자는 거지. 그런 내 자신이 우습기도 하고 섹스에 얽매여 있는 것 같기도 하고 허무하기도 하고. 그래서 정말로 낯선 남자와 감정 없는 섹스를 해보고 싶어."

오래 전, 나도 그럴 때가 있었다. 애인과의 관계가 일상이 되어갈 때, 의무방어전을 치르듯 섹스를 할 때, 섹스하면서 다른 생각할 때, 차라리 다른 남자와 자고 싶다고 생각했다. 열정이 사라진 관계를 지속시킬 수 있는 윤활유가 되지 않을까 싶었다. 그래서였을 것이다. 애인과 '헤어지자' 운운하며 크게 싸운 날, 별로 좋아하지도 않는 남자를 불러내 같이 잤다.

처음에는 아무도 모르는 은밀한 비밀을 갖고 있다는 데서 묘한 흥분을 느꼈다. 애인이 나에게 소홀하거나 섭섭하게 대하더라도 예전처럼 안달복달할 것도 없었다. 왠지 모를 미안함에 처음 연애 시작할 때처럼 다정하고 사랑스럽게 굴 수 있었다. 애인과 나, 둘만이 긴밀하게 이어져 있는 관계에서 한 발짝 거리를 두고 나니 오히려 연애에 대한 집착에서 벗어나는 것 같았다.

그러나 애인과 섹스를 할 때마다 죄책감을 떨쳐버릴 수 없었다. 낯선 남자와의 단 하룻밤의 섹스는 머릿속에 깊이 각인돼 애인과의 섹스에서 흥분할 수도, 좋아할 수도, 집중할 수도 없었다. 결국 얼마 지나지 않아 애인과 헤어졌다. 오랫동안 사랑하던 애인과 헤어지면서 내내 후회했다. 다른 남자와 자지 말걸, 도대체 내가 왜 그랬을까.

그 사건은 나의 처음이자 마지막 '바람'이 되었다. 다른 남자와 잘 거라고 떼를 쓰는 후배를 보면서 그녀에게 필요한 건 '감정 없는' 섹스가 아니라 정말 '감정 있는' 섹스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너무 사랑해서, 그 남자의 손길만 닿아도 자지러질 것 같은 뜨거운 섹스. 그런 섹스는 누구에게나 필요하다. 나에게도 그녀에게도.

그러나 그 전에 먼저 해야 할 것은 그녀의 애인에게 이별을 고하는 것이다. "애인 있으면서 바람 피워서는 안 돼" 식의 식상한 충고를 하는 게 아니다. 하룻밤의 충동적인 섹스 이후 오랫동안 머릿속을 떠나지 않을 후회와 자책, 찜찜함 때문이다. 그 사건 이후 나는 스스로를 미워하게 됐으니까. 그런 감정은 평생 안 느끼고 사는 게 낫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