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김지현의 에로틱 칵테일

(74) 와이프이기 때문에 섹스하기 싫다?

행복을 만드는 사람들 2011. 2. 21. 18:25

(74) 와이프이기 때문에 섹스하기 싫다?

"오래비 연말쯤 결혼할 것 같다." 대학 선배들과의 술자리. 알고 지낸 지 오래된 선배가 만나자마자 폭탄선언이다!

"아무리 오빠가 결혼에 목매어도 그렇지 겨우 다섯 번 만난 여자와 결혼은 무슨 결혼?" 놀라서 반문하자 '대한민국 선 시스템'이 원래 그렇단다. 어른들이 소개시켜준 남자와 여자. 서로 조건 잘 맞고 양가 어른이 일찌감치 인정한 사이인 만큼 처음 만나 외모 나쁘지 않은지 확인하고, 두 번째 만나 영화 한 편 보면서 다음에도 만날지 안 만날지 고민하고, 서로 싫다는 말 없이 세 번째 만남을 이어간다면 네 번째 만남 즈음에서는 슬슬 결혼 이야기를 꺼내게 된단다.

선 한 번 안본 나로서는 이해가 되지 않지만 마흔을 코앞에 두고 와이프 빼고 모든 걸 가진 선배의 입장이라면 실용적일 수도 있겠다. 정작 문제는 다른 데 있었다.

"학교 선생이고, 나이도 나보다 네 살이 어리고, 나름 동안에 예쁘장한 얼굴이야. 그런데 이 여자랑 자고 싶지가 않아."

아, 실제로 그런 여자들이 있다. 나는 '색기'라고 표현하지만 일반적으로는 '성적 매력'이라고 표현하는, 여자의 아주 중요한 매력 중 하나이다.

연애에서야 속 깊고 다정하고 말 잘 통하는 그녀가 최고의 애인일 수 있지만 매일 한 침대에서 함께 잠들고 일어나야 하는 여자라면 안고 싶고 자고 싶고 만지고 싶어야 하는 게 당연하다. 나라도 그런 남자와 결혼하고 싶지 않다. "자고 싶지 않은 여자와 어떻게 결혼을 해! 안 돼, 아무리 조건이 좋아도 나는 반대야."

나는 '순진하게도' 정색하고 말했다. 그런데 역시 먼저 결혼한 선배들은 다르다! 내 말에 저마다 시큰둥하게 덧붙였다.

"네가 10년만 어렸어도 결혼하지 말라고 했겠지. 그런데 네 나이 내일모레 마흔이다. 네가 그 동안 아무리 굶었어도 네 몸이 니 욕정을 못 쫓아갈 거다. 얼마 안 가 와이프가 조금이라도 섹시하게 굴까봐 걱정하게 될걸."

"그래, 신혼 때야 저녁밥 먹다가도 한 번, 침대에 들어가서 한 번, 아침에 일어나서도 한 번이지. 6개월을 못 가더라. 퉁퉁하든 마르든, 섹시하든 안 섹시하든, 예쁘든 안 예쁘든 그런 날이 곧 온다. 그냥 경제적으로 능력 있고 애 똑똑하게 잘 키우고 요리 잘하는 여자와 결혼해."

"섹스? 나이 들어서도 하고 싶지. 난 성욕은 20대 못지않아. 다만 와이프랑 하기 싫을 뿐이지."

선배들의 놀랍도록 현실적이고 신랄한 지적에 그는 고개를 주억거렸다. 맞는 얘기일 수 있지만 또 한편으로는 무척 슬픈 이야기다. 나 역시 매일 섹스하고 싶을 만큼 섹시한 남자와 결혼하고 싶다. 그러나 그 남자가 내 남편이기 때문에 섹스하기 싫어질 날이 과연 올까. 그렇다면 그런 결혼, 꼭 해야 하는 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