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1) 잠자리 매너 떠벌리는게 이별의 분풀이?
한 여자가 있다. 그녀와 나의 공통점은 한때 K라는 남자를 공유했다는 것이다. 그녀와 헤어지고 나서 1년 6개월 뒤에 나와 잤으니 그녀에게 대단한 경쟁심을 느낄 일은 없었다. 다만 처음 봤을 때 '생각보다 예쁘진 않구나' 정도만 생각했던 것 같다. 그리고 물론 그녀는 나와 그 남자의 관계를 전혀 알지 못한다.
그녀에게 그 남자는 오랫동안 사귀었다가 변심해서 자신을 버린 나쁜 남자요, 나에게는 잠시잠깐의 호감으로 몇 번 자다가 연애까지 발전하지 못하고 유야무야된 남자로 오히려 친구에 가까운 남자다.
얼마 전 그녀를 알고 나를 알고 또 그 남자를 아는 지인과 만나 수다를 떨던 끝에 그 남자에게 새 애인이 생겼다는 소식을 들었다. 나와 잤던 남자의 연애 혹은 결혼 소식을 들으면 기분이 묘해지긴 하지만 '나와는 인연이 아닌 사람, 축복해줘야지' 하고 웃어넘기는 수밖에. "그런데 그녀는 생각보다 훨씬 충격을 받았나봐. K군과의 잠자리 이야기까지 하고 다니더군. 그렇게 잠자리 매너가 별로래. 여자를 배려할 줄도 모르고, 그녀 표현에 따르면 '변태'에 가깝다더군."
나는 그 자리에서 웃다가 넘어질 뻔했다. 헤어진 지 2년이 넘는 남자에 대하여 섹스를 팔아 저주하는 것이나 그 이야기가 여러 사람들의 입을 통해 전해지는 것이나 코미디 같은 상황이었다. 그런데 그 남자와 잤던 또 다른 여자인 나로서는 사실 그의 섹스 매너가 그렇게 최악은 아니었다. 손길은 다정했고 물건은 아주 훌륭했고 오르가슴을 느끼진 않았지만 내 컨디션을 매우 배려하는 편이었다. 변태는커녕 오히려 밋밋한 체위를 고집해서 재미없을 정도였다.
다음 순간 내 모든 옛 애인들을 떠올랐다. 나에게도 안 좋게 헤어졌던 애인들이 있다. 내게 저주를 퍼붓거나 생채기를 내고 싶은 남자도 있을 것이다. 그들도 지인들에게 나와의 잠자리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다닐까. '얼마나 밝히는지. 아무 남자나 다 좋아할걸'이라고 말할까, '걔 벗겨놓으면 몸매가 뭉툭해서 별 성욕도 안 일어'라고 말할까, '밋밋하고 헐렁해서 느낌이 잘 오지 않는 애야'라고 말할까.
얼굴이 혼자 발그스레 달아올랐다. 아무리 생각해도 민망하고 부끄러운 일이다. 이별은 누구에게나 아프다. 특히 상대방의 감정이 일방적으로 식어서 이별했다면 여전히 감정이 있는 사람으로서 그들을 축복하며 보내주기는 쉽지 않다. 어떻게든 단점을 끄집어내어 소문을 내고 저주를 퍼붓고 싶다.
그러나 두 사람이 가장 솔직하고 담백하게 속살을 드러내었던 순간, 살결이 닿는 것만으로 짜릿하고 고마웠던 그 순간을 파는 건 아무래도 좀 치사하다. 남들에게 욕하고 다닐 만큼 잠자리 매너가 안 좋았다면 그녀는 왜 차이기 전에 먼저 그 남자와 헤어지지 않았을까. 우리, 한때 사랑했던 사람에 대해 일종의 책임감은 갖고 살자. 사랑은 사랑이고, 이별은 이별이고, 섹스는 섹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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