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김지현의 에로틱 칵테일

(79) 한 번의 섹스냐, 평생의 좋은 선배를 갖느냐

행복을 만드는 사람들 2011. 2. 21. 18:32

(79) 한 번의 섹스냐, 평생의 좋은 선배를 갖느냐?

 

후배 하나가 있다. 알고 지낸 지 10년은 되는 것 같다. 회사가 근처인지라 종종 점심시간에 마주치거나 술을 마시는데 학교 선배로서의 존경심이나 동경이 가시지 않았는지 마주칠 때마다 "누나는 아직 괜찮아요." "누나는 아주 매력적이고 멋진 여자예요"라고 말해주는 게 나름 귀엽기도 하다.

그러던 우리가 몇 개월 전 술에 취해 키스를 했던 게 문제다. 그 뒤로 이 남자애는 기회가 될 때마다 "누나네 집에서 라면 먹고 가도 돼요?" "누나도 외롭고 나도 외로운데 우리 그냥 같이 자보면 안 돼요?" 하며 은근히 들이대는 것이다. 그럴 때마다 흠칫 당황스러우면서도 "나랑 자고 나면 다시는 날 만나지 못할 거야, 한 번의 섹스를 할 것이냐 아니면 평생 좋은 선배를 갖느냐, 둘 중 하나 선택해"라고 농담처럼 말한다.

그런데 또 한편으로는 그 아이의 말에 일리는 있다. 더 솔직하게 이야기하자면 나 역시 이 아이와 자고 싶다. 신체건강하고 매력적인 남자로 성장한 후배가 싫지 않다. 우리가 같이 잔다면 몇 개월에 걸친 나의 욕구불만이 가볍게 씻겨 나갈 것도 같다.

그러나 중요한 건, 아무리 머리를 굴려봐도 이 후배를 '남자'로 사랑할 수 없을 것 같은 게 문제다. 그는 너무 어리고 생각도 많고 얼굴 생김새나 몸매도 내가 끌리는 타입이 아니다. 이런 타입의 남자들은 현재 경제 상태와 커리어 관리, 미래 문제까지 내가 돌봐주어야 하는데 나는 그렇게 일일이 내 손을 많이 타는 남자에게 쉽게 질린다. 그냥저냥 정 때문에 연애한다고 해도 몇 개월 안 되어 서로 생채기 주며 헤어지리라는 것을, 10년이 넘는 연애 생활에 걸친 노하우로 금세 알 것 같다.

또한 스스럼없이 농담 따먹기나 하던 우리가 섹스 이후 닥치는 그 어색함과 당황스러움을 감당할 수 있을 리 만무하다. 연애할 가능성이 없는 두 남녀가, 순전히 외롭다는 이유만으로 같이 자도 되는 걸까? 내가 이런 이야기를 하니 몸도 마음도 쿨한 유부남 선배는 말한다. "진정한 친구는 마음만 위로해주는 게 아니라 몸도 위로해줘야 하는 거야. 친구가 실연을 당해 슬퍼한다, 당장 가서 얘기 들어주고 위로해주고 욕해주잖아. 그런 친구가 섹스에 목말라한다? 그럼 섹스로써 도와줘야지. 그건 남녀의 문제가 아니라 우정의 문제야."

저런, 그는 아무래도 외국에 나가서 살아야겠다. 그는 가장 중요한 걸 잊고 있다. 우리가 같이 자고 난다면 서로를 잃게 되리라는 것. 동경하는 선배, 아끼는 후배, 연애 이야기와 회사 이야기를 허심탄회하게 털어놓을 수 있는 사람과 사람. 어쩌면 우리가 섹스보다 더 갖기 힘든 것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