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김지현의 에로틱 칵테일

(81) 첫날 만나자마자 몸섞은 사랑의 뒤끝이란...

행복을 만드는 사람들 2011. 2. 21. 18:34

(81) 첫날 만나자마자 몸섞은 사랑의 뒤끝이란...

얼마 전 한 남자를 만나 아주 짧게 열정적으로 사랑하다 헤어졌다. 그는 젊고 섹시했고 심지어 대화도 잘 통했다. 우리는 거의 처음 본 순간부터 서로에게 강하게 끌렸고 남의 눈이나 세상의 기준 따위에 굴하지 않고, 처음 만난 그날 섹스를 했다. 그가 먼저 손을 잡아왔고 내가 키스를 했고 누가 먼저랄 것 없이 옷을 벗었다. 서로의 속살은 다정했고, 우리는 새벽이 올 때까지 사랑을 속삭였고, 지금 죽어도 여한이 없을 만큼 꼭 껴안고 달콤하면서 짧은 잠을 잤다.

자, 여기까지 이야기하면, 영화에나 나옴직한 완벽한 로맨스다. 이런 일이 일어나기를 나는 꿈속에서조차 바랐다.

그러나 현실은 생각보다 아주 빨리 다가왔다. 그날만 해도 집에 가기 싫어하고 하루 종일 함께 있고 싶어하고 마주 보고 있을 때마다 다정스레 입을 맞춰오고 함께 여행을 떠나자고 말하던 그 남자는, 딱 일주일 만에 제정신을 찾았다. 그는 몸이 피곤하다며 연락도 잘 해오지 않으면서 저녁엔 친구를 만나 술을 마셨고 '보고 싶다'고 하면서도 나를 보러 오지 않았다. 친구와 함께 하루 종일 쇼핑을 하고 영화를 보러 가면서, 정작 나를 만나러 올 시간에는 밀린 잠을 잤다. 그러면서도 그는 말했다. "너를 정말 사랑해, 너 같은 여자를 만날 수 있어서 얼마나 행복한지 몰라."

아, 남자들에게 섹스는 정말 다양한 의미를 지닌다. 사랑하는 사람과 다정하게 몸을 섞는 것, 줄 듯 말 듯 안 줄 때 감정이 상승하는 것, 너무나 갖고 싶어서 '환장하겠는' 것, 자고 난 뒤엔 왠지 허무하고 허탈해지는 것, 너무 쉬우면 엔조이인 것, 다른 남자에게도 이랬을까봐 의심스러운 것, 그럼에도 '당길 때' 해소할 수 있으면 그것처럼 편리한 게 없는 것.

남자의 연애에서 이 여자와 자고 싶다는 욕망과 정복감이 여자를 사랑하게 되는 주요한 요인인 만큼 여자의 연애에서는 사랑받는 마음이 필수다. 나 때문에 긴장하고 늘 나를 보고 싶어하고 떨어지기 싫어하는 남자를 볼 때, 여자는 행복해진다. 그래서 연애전문가들은 여자들에게 '꼭 3개월 뒤에 섹스하라'고 충고하는지도 모르겠다.

나는 난생 처음 규칙을 어겼다. 이 남자에게는 그래도 될 것 같았다. 나와 자고 난 뒤에도 여전히 한결같이 나를 사랑해주고 떨려하고 질리지 않고 매순간 달콤하게 대해줄 줄 알았다. 그러나 그 남자 역시 대한민국의 평범한 남자였다.

내가 조금만 더 냉정하고 여우 같았더라면, 혹 그 남자에게 그렇게까지 끌리지 않았더라면, 첫눈에 사랑에 빠지지 않았더라면, 우리에게 이렇게나 안 좋은 뒤끝이 있었으려나. 나는 그 남자에게 충분히 사랑받고 있었으려나.

나는 이 나이 먹도록 아직도 잘 모르겠다. 사랑하게 되는 순간 머리를 굴리고 내숭을 떨고 퉁기는 대신 내 몸과 마음이 원하는 대로 순간에 충실하는 것. 그게 왜 더 이상 사랑받지 못할 이유가 되는 것인지,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할 수가 없다. 그리고 그런 현실이 너무 슬프다.


←김지현은? 기업PR, 프로모션, 공연, 출판 등의 콘텐츠 관련 일을 하는 30대 초반의 기획자. 섹스는 테라피요, 수면제요, 반짝 하는 황홀한 순간이요, 자취생의 고기반찬이라고 믿지만 가끔 욕구불만에 시달리며 평범한(?) 성생활을 영위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