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김지현의 에로틱 칵테일

(83) 애인과 '섹파'가 다른 남자

행복을 만드는 사람들 2011. 2. 21. 18:40

(83) 애인과 '섹파'가 다른 남자

"연애 잘하고 있니?"

오랜만에 술자리에 나타난 후배에게 물었다. 그녀는 소개로 만난 남자와 한 달째 열애 중이었다.

"언니, 나 고민이 하나 있는데, 너무 부끄러워서 어떻게 말을 꺼내야 할지 모르겠어요." 후배가 거의 우는 목소리로 대답했다. 한참 핑크빛 연애 모드에 빠져 있을 그녀가 잔뜩 핼쓱해진 이유는, 우연히 애인에게 섹스파트너가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 것. "오빠 휴대폰에 이상한 문자 메시지가 남겨진 걸 보게 됐어요. 너무 겁나서 오빠에게 물어보지도 못하겠어요."

연애 경험도 섹스 경험도 많지 않은 순진하고 착한 그녀. 정신 차리고 당장 헤어지라고 그녀의 뺨이라도 때려주고 싶었다.

그런 남자들이 있다. 애인도 있고, 섹스파트너도 있는 남자. 몇 년 전 그 남자도 그랬다. "나는 애인에게 절대 들키지 않아" 하며 나와 잠만 자던 남자. 나와 잘 때마다 "왜 내 여자친구랑 하면 이런 느낌이 안 들지?"라고 그는 말했다. 그의 최소한의 예의는, 나를 만나러 올 때는 커플링을 빼고 오는 것이었다.

어느 날 호기심에 그녀의 미니홈피를 찾아들어가 보았다. '사랑'이라는 사진첩 메뉴에 '애인이 사준 선물' '우리 여행의 흔적' '애인과 함께 먹은 밥' 등등 사랑하는 남자에 대한 자랑이 가득했다. 말투 하나하나, 하트 이모티콘 하나하나에 애인에 대한 사랑이 넘쳐흘렀다. 나는 왠지 모를 부끄러움에 얼굴이 달아올라 더 이상 그녀의 미니홈피를 들여다볼 수 없었다. 우리의 관계는 매우 심플했다. 당시 사귀는 사람이 없던 나로서는 간헐적으로 샘솟는 욕구만 채우면 됐고, 그는 애인과는 할 수 없는 농도 짙고 강렬한 섹스를 즐길 수 있었다. 우리 사이에는 어떤 감정도, 애정도 없었다. "난 내 여자친구를 진심으로 사랑해, 그녀랑 결혼할 거야." 그는 항상 그렇게 말했지만, 나는 그의 여자친구가 불쌍해 견딜 수가 없었다. 그리고 그런 남자와 섹스를 하고 있는 스스로가 견딜 수 없이 한심해 보였다. 그래서 나는 그를 '끊었다'. 그럼에도 그는 몇 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잊을 만하면 한 번씩 연락을 해온다. 내가 알기로 두 사람은 아직도 헤어지지 않았다.

그런 남자가 나쁜 건, 이미 '고기 맛'을 알아버렸다는 것이다. 애인과 섹스파트너를 둘 다 가져본 남자, '나는 너를 사랑하지만 다른 여자와도 잘 수 있어'라고 생각하는 남자는 절대 평생토록 한 여자에게 충실하지 못한다. 그 스릴과 쾌락과 뭔가 능력 있는 남자가 된 것 같은 자만심을 잊지 못해 어느 순간 다시 '파트너'를 찾아 나서게 마련이다.

난 내 후배를 너무나 아끼기 때문에 그런 취급을 당하도록 내버려둘 수가 없었다. 그녀가 내 앞에서 뚝뚝 눈물 흘릴 만큼 잔인하고 냉정하게 쏘아붙인 건, 바로 그런 이유에서였다. 그러나 그녀는 몇 주가 지난 지금까지도 '그 남자와 헤어졌다'고 말하지 않고 있으니....

앞으로 절대 이런 일 없을 거라는 남자의 새빨간 거짓말에 아무래도 넘어간 것 같은 불길한 예감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