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김지현의 에로틱 칵테일

(86) '침대에서 해야 하는 말'

행복을 만드는 사람들 2011. 2. 21. 18:43

(86) '침대에서 해야 하는 말'

"내 애인은 말이야, 섹스할 때 얼마나 달콤한지 몰라."

친구는 만나자마자 새로 생긴 애인을 자랑하느라 여념이 없다. 남자 경험이 별로 많지 않은 친구인 만큼 지겹긴 해도 꾹 참고 들어줄 필요가 있었다.

"섹스할 때마다 내 귀에 대고 '네 몸은 정말 예뻐!' 하고 말하거든. 사실 내가 몸매가 좋은 편이 아니잖니. 키 작고 통통하고.... 그런데 애인 눈에는 내 몸이 그렇게 예뻐 보이나봐."

세상에, "네 몸은 정말 예뻐!"라. 그러고 보니 내 애인들 대부분이 침대에서 그렇게 말했었다. "야, 남자들은 원래 다 그렇게 말해"라고 친구의 들뜬 마음에 찬물을 끼얹으려다가 문득 궁금해졌다.

침대에서 남자들이 하는 말들은 몇 가지 정해져 있다. '우리 정말 속궁합 잘 맞는 것 같아' '너 정말 부드럽다' '따뜻해' '이렇게 계속 있고 싶다' '너랑 하는 게 좋아' 기타 등등. 아무리 생각해보아도 이런 말 외에 정신이 바짝 들 만큼 신선하고 새로운 표현은 들어본 적이 없는 것 같다. 남자들에게 '침대에서 여자에게 해야 하는 말' 같은 매뉴얼이 있을 리 만무한데, 이렇게 비슷비슷한 말들은 다 어디서 배워오는 걸까?

생애 첫 섹스 때는 모든 것이 놀랍고 새로웠을 것이다. 봉긋하게 솟은 여자의 가슴선은 신비하고 매혹적이고, 남자와 달리 야들야들하고 고운 피부는 만져도 만져도 질리지 않았을 것이고, 여자의 몸에 처음으로 들어간 순간 그 깊고도 따뜻한 감촉에 정신이 아련해졌을 것이다. 그 순간 저절로 탄성이 흘러나왔을 것이다. 네 몸은 정말 예쁘구나, 너 정말 부드럽구나, 이렇게 영원히 같이 있고 싶다....

그런데 우리의 머릿속은 영악하게도 그 단어들과 함께 그녀의 반응도 함께 기억한다. 그 말을 들었을 때 그녀가 얼마나 좋아했었는지, 볼이 발그레 달아오르면서도 얼마나 흥분했었는지 말이다. 그래서 남자들은 그 말을 계속 하게 된다, 그녀 이후의 여자, 또 그녀 이후의 여자, 또 그녀 이후의 여자에게도. 내 애인의 몸에서 다른 여자의 흔적을 발견할 때는 종종 있다. 너무나 자연스러운 리드, 익숙하고 세련된 체위, 믿을 수 없이 달콤한 애무. 내 남자가 다른 여자에게서 섹스를 배웠기 때문이다. 그 사실만으로도 질투가 나는데, 거기에 이제 섹스하면서 하는 말들에도 질투심을 느껴야 한다니!

내가 이런 하소연을 하니 경험 많은 여자 선배가 한 마디 한다. "그러는 너는? 너는 섹스하면서 매번 하는 말 없어?"

아, 그러고 보니 나에게도 한 가지 있다. "당신 정말 섹스 잘해!" 나 역시 10년이 넘는 섹스 라이프를 거치면서 남자들이 가장 좋아하고 듣고 싶어하는 말이라 스스로 결론 내린 상용구일 테다. 우리는 경험과 공부를 통해 성장하고 발전한다. 그리고 우리의 섹스는 오랫동안 학습된 결과이다. 나는 좋은 쪽으로 생각하기로 했다. 그들의 그 거짓말 아닌 거짓말은, 결국 지금 이 순간 나를 만족시키고 행복하게 하기 위해서 튀어나오는 말들이 아니던가. 그러므로 그냥 현재의 달콤한 언어들을 즐기면 되는 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