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김지현의 에로틱 칵테일

(91) 눈 감고 섹스하는 남자

행복을 만드는 사람들 2011. 2. 21. 18:50

(91) 눈 감고 섹스하는 남자

나는 섹스할 때 눈을 꼭 감고 한다. 왜 그런지는 나도 잘 알 수가 없다. 나 역시 촉각에 약한 '여자'인지라 내 몸에 느껴지는 그의 손길 하나하나를 눈 감고 일일이 느끼고 싶은 것일 수도 있고, 첫 경험 때 눈 뜨고 바라본 남자친구의 물건이 너무 흉물스럽고 자극적이어서 화들짝 눈을 꼭 감은 데서 시작됐는지도 모르겠다. 키스할 때 눈 말똥말똥 뜨는 여자가 부담스러운 것처럼 섹스할 때 동그랗게 눈을 뜨고 '이 남자 잘하나 못하나' 혹은 '이 남자 물건이 좋은가 나쁜가'를 꼼꼼히 쳐다보고 있는 것도 남자에게 여간 민망한 일이 아닐 게다. 게다가 눈을 뜨고 있으면 내 뱃살이 너무 도드라지지는 않나, 지금 조명이 너무 밝은 것 아닌가, 잡생각도 많아진다.

그러나 내가 눈을 감는 결정적인 이유는, 아마 남자들의 표정 때문일 것이다. 내 인생에서 가장 사랑했던 남자와의 섹스 때, 사정이 막 끝난 그의 얼굴이 내 인생에서 가장 미워했던 애인과 너무나 비슷해 보여 화들짝 놀랐던 경험은 아직도 잊지 못하겠다. 평소 그렇게 잘 웃고 다정하고 잘생겨 보였던 애인들이 섹스할 때는 얼굴이 변한다. 몸 안쪽 깊은 곳에서부터 급히 끌어오르는 욕망 앞에서 그들은 무념무상 오로지 본능에 충실한 표정을 짓고, 그 표정은 항상 타인의 것처럼 낯설다. '사랑스러운 애인'보다 '한 마리 동물'을 보는 것 같다고 해야 하나. 그런 표정의 애인과 섹스 도중 눈이 마주치면 나는 도무지 어떤 표정으로 그와 얼굴을 마주하고 있어야 하나 민망해서 급하게 눈을 감곤 하는 것이다.

그런데 얼마 전 나의 애인에게 아주 놀라운 점을 발견하고 말았다. 체위를 바꾸며 살짝 실눈을 떴는데, 아~ 이 남자, 눈을 감고 섹스를 하는 것이다! 남자는 자타공인 시각적 동물 아니었던가. 그 지루하고 적나라한 야동을 보며 잔뜩 흥분하는 것도 그렇고, 여자의 벗은 몸이나 자신의 리드에 따라 변하는 여자의 표정에 자극받는 것, 흔들리는 가슴이나 가는 허리를 보는 게 그들의 섹스에서 아주 큰 즐거움이라고 나는 알고 있었단 말이다.

그러고 보면 그의 애무는 아주 감성적이고 섬세하다. 아마 그가 '보는' 즐거움뿐만 아니라 '느끼는' 즐거움도 알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실제로 눈을 감으면 내 피부에 닿는 자잘한 자극들이 10배는 더 크게 다가온다. 귓불을 스치는 긴 신음에 온몸의 세포가 일일이 반응하고, 목덜미에서부터 가슴 선을 천천히 타고 내려가는 혀의 작은 움직임에 오르가슴을 느끼기도 한다. 눈을 말똥말똥하게 뜨고 있을 때는 전혀 못 느낄 자극들이다. 그 느낌을 아는 남자이기에 그런 섹스를 할 수 있는 게 아닐까.

난 남자들도 종종 눈을 감고 섹스했으면 좋겠다. 내 몸 구석구석을 낱낱이 지켜보고 있는 남자의 시선은 아무래도 불편하다. 관찰하는 대신 눈을 감고 내 여자의 몸을 느껴보라. 우리의 피부는 생각보다 훨씬 더 보드랍고, 우리의 애무는 더 자극적이고, 우리의 키스는 더 달콤하고, 우리의 그곳은 아마 훨씬 깊고 따뜻할 것이다. 촉각이 주는 즐거움도 이제 알 때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