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9) '잠자리 금기어' 옛 연인 이야기
사실 내가 먼저 이야기를 꺼냈으니 내 잘못이다. 그런데 섹스할 때마다 나는 참을 수 없이 궁금하다. 어차피 내가 첫 여자도 아니고, 남자들도 섹스할 때 여자마다 다른 느낌을 갖는다고 하니, 도대체 나는 그의 과거 여자들과 어떤 점이 다를까, 내가 더 좋을까, 어떤 점이 좋을까, 혹은 그녀들에 비해 뭔가 불만이 있는 게 아닐까? 뭐 이런 것들 말이다.
처음에는 "뭐라 설명할 수 없어, 여하튼 너랑 섹스하는 게 좋아"라고 에둘러 대답하던 그가 내 집요한 질문에 하나둘씩 과거 이야기를 털어놓았다. 너무 짧게 끝나서 지금 생각해도 부끄러운 첫 경험, 사랑해서 지켜주고 싶었던 풋사랑, 만날 때마다 꼭 섹스를 하고 헤어졌다는 여자, 처음 입으로 그를 받아주었을 때 만족감보다 일종의 모멸감을 느꼈다는 여자…… 다양한 섹스 경험들이야 웃으면서 넘길 수 있었다. 그런데 이야기가 깊어지는가 싶더니, 어느새 그가 지독히 사랑했던 여자의 이야기로 넘어간 게 문제였다.
연애 생활 10여 년, 나이 먹을 만큼 먹고 찐한 사랑 한 번 안 한 남녀가 어디 있으랴. 그럼에도 그에게, 무릎을 꿇고 매달릴 만큼 사랑하고 절절했던 여자가 있다는 사실을 안 이후, 나는 갑자기 싸늘하게 식어버렸다. 그토록 사랑했던 여자와는 속궁합이나 섹스 따위는 별로 중요하지 않다는 사실을 나는 이미 알고 있지 않던가.
나에게도 그런 사랑이 있었다. 이제는 얼굴조차 기억나지 않지만 아파하고 후회하고 그리워하느라 만신창이가 되었던 감정과 시간은 가슴속 한 구석에 각인되어서 잊혀지지 않는다. 행복하면 행복한 대로, 불행하면 불행한 대로 고스란히 나를 따라다닌다. 그러니까 이 감정은 그 지독한 사랑의 열병과 고통을 그가 나 아닌 다른 여자와 이미 경험했다는 데서 오는 질투와 심통일지도 모르겠다.
돌아오는 길에 생각했다. 사실 그에게 화를 내어서는 안 되는 것이었다. 내 기억들과 완전히 결별하지 못한 나를 그에게 투영한 것이다. 오랫동안 노력했으나 여전히 나는 치열했던 옛 사랑의 열정과 애증과 상처를 지우는 데 실패한 것이다.
나와의 섹스가 얼마나 좋아? 과거 여자들보다 더 좋아? 그녀들보다 더 나를 사랑해? 난 그녀들과 어떻게 달라? 이런 질문들은 그가 아닌 나에게 먼저 던져야 했다. 그와의 섹스를 옛 애인과의 섹스보다 더 좋아하는가, 그를 옛 애인보다 더 사랑하는가……. 아니, 나는 떳떳하지 못하다. 나야말로 그와의 섹스를 끊임없이 옛 애인들과 비교하고 있었다!
'찐한' 사랑은 다음 연애에 무척 도움이 된다.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 다시는 사랑을 놓쳐버리지 않기 위해 진심으로 노력하고 배려하는 사람이 될 수 있다. 그래서 그가 지금 내 앞에, 나는 또 그 앞에 '더 나은 연인'으로 있는 건지도 모르겠다.
그럼에도 베갯잇에서 절대 꺼내지 말아야 할 이야기들이 있다. 옛 여자 혹은 남자 이야기. 집요하게 물어볼 때는 차라리 거짓말을 하자. 여러 사람과 자봤지만 당신이 최고야, 당신처럼 속궁합이 잘 맞고 당신처럼 나를 행복하게 해주는 사람이 없어. 당신은 정말 섹스를 잘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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