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김지현의 에로틱 칵테일

(90) 혼자 사는 여자는 쉽다?

행복을 만드는 사람들 2011. 2. 21. 18:49

(90) 혼자 사는 여자는 쉽다?

나에게는 '좀 노는' 남자친구가 하나 있다. 알고 지낸 지 20년이 넘다 보니 이제는 서로의 연애사와 인생사, 직장사부터 심지어 성생활과 성적 취향까지 낱낱이 공유하는 사이다. 그가 얼마 전 낮게 깔린 목소리로 전화를 걸어왔다. "나, 그녀랑 끝났다."

여기서의 '그녀'는 그의 애인이 아니다. 그와 1년 동안 딱 섹스만 나누던 파트너다. "참 이상해, 걔랑은 성격이나 취향 같은 게 전혀 안 맞거든. 얼굴이나 몸매도 내 스타일이 아니고. 근데 섹스 하나는 끝내주게 잘 맞는단 말이지" 하면서 일주일에 두세 번은 꼭 만나 섹스를 해왔던 것이다.

"그렇게 몸이 잘 맞는 것도 인연이 아닐까? 몸정도 정이라잖아, 걔랑 연애하면 안 돼?"라는 내 말에 그는 "걔 오래 사귄 애인 있어. 그리고 죽어도 연애는 하기 싫어" 대답하지 않았던가. 그런 둘 사이에 도대체 무슨 일이 생겼기에?

"왜? 애인한테 죄책감 생겨서 그런 관계 맺기 싫대? 아님 너랑 정식으로 사귀재?" 친구의 대답이 아주 가관이다. "아니, 걔가 본가(本家)로 들어가게 됐어. 앞으로 걔랑 하려면 모텔에서 해야 하는데, 걔한테 돈 쓰고 싶진 않거든."

사랑하지도 않으면서 일주일에 두세 번 섹스를 할 수 있었던 이유는, 그녀가 바로 혼자 사는 여자였기 때문인 것이다. 역시 '좀 노는 내 친구'답다고 생각하다가 문득 '나는? 나 역시도 혼자 사는 여자이지 않은가' 싶은 거다.

그러고 보면 독립한 이후 내 모든 연애사를 돌아봤을 때 섹스가 단 한 번도 어려웠던 적이 없다. 굳이 '커피 한 잔 하고 갈래요' 유혹하지 않더라도 내가 혼자 사는 여자라는 사실을 남자들이 알고 난 뒤로는 아주 자연스럽게, 그리고 서둘러 섹스 관계에 돌입되었던 것이다.

"혼자 사는 여자들은 쉬워?"라고 친구에게 묻자 그는 아주 냉정하게 "당연하지, 여자한테 모텔 가자고 하는 게 얼마나 민망하고 쪽팔린 일인지 알아? 게다가 모텔비도 장난 아니다. 모텔비 계산하는 것도 뻘쭘하고. 반면 혼자 사는 여자랑은 섹스까지 가기도 쉽고 돈도 안 들고 분위기도 편안하고. 완전 쌩유지!" 한다.

순간 우리집에 들락날락했던 수많은 남자들이 머릿속을 스쳐 지나가면 왠지 모를 배신감과 씁쓸함이 느껴졌다. 그중에는 사랑한 남자도 있었고, 분위기에 취해 하룻밤을 보낸 남자도 있었고, 정말 긴긴 이야기만 나누다 돌아간 남자도 있었다. 내가 그들에게 문을 열어준 그 순간, 나는 섹스를 생각한 게 아니라 내가 가장 편안해하고 좋아하는 공간을 용기내어 소개한 것이었다. 그 모든 남자들의 속내에 '이 여자 혼자 사는 여자네? 완전 봉잡았네'가 있었다고 생각하니 억울하고 화도 나는 것이다.

모든 혼자 사는 여자들이 아무 남자를 집에 들이는 헤픈 여자가 아니다. 돈 안 들이고도 섹스할 수 있는 여자도, 언제든 찾아가서 욕구를 해소할 수 있는 여자도 아니다. 혼자 사는 여자에 대한 편견은 이제 그만 버릴 때도 됐다. 아니, 여자 집에서 '공짜로' '쉽게' 섹스를 했다고 좋아라 하는 유치함 먼저 버리자, 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