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김지현의 에로틱 칵테일

(92) 섹스하기 전에 그들이 하는 말들

행복을 만드는 사람들 2011. 2. 21. 18:51

(92) 섹스하기 전에 그들이 하는 말들

 

"가져도 돼요?" 6살이나 어린 그 녀석이 한참 애무에 열을 올리다 결정적인 순간에 던진 한마디다. 술에도 적절히 취했겠다, 젊고 건강한 남자와의 섹스에 대한 기대심에 잔뜩 흥분해 있던 나는 정신이 확 들고 말았다.

가져? 갖긴 뭘 가져? 평소 동경해 마지않던 '누님'과 한 방, 한 침대에 누워 남자와 여자로 뒤얽혀 있으니 낯설고 당황했을 마음은 이해 못 할 것도 없지만 여자로서 이런 눈치 없고 매너 없고 낭만적이지도 못한 말은 대학 때 이후 처음 들었을 것이다.

두 번째 연애였던가, 우리는 대성리로 첫 여행을 떠났고 내심 나는 그와의 설레고 떨리는 하룻밤에 전날 밤잠을 설쳤더랬다. 함께 고기를 구워 먹고 강가를 산책하고 밤하늘을 보며 사랑을 속삭이던 그가 민박집에 들어서서는 결연한 표정으로 말하는 것이다. "오늘밤 널 지켜줄게."

지켜주긴 도대체 뭘 지켜준단 말인가. '차라리 우리 집에 도둑이 들지 않도록 집 앞을 지켜다오!'라고 그에게 말하고 싶었다. 나의 처녀성이나 순결, 섹스, 하룻밤은 누군가 지켜주거나 혹은 갖거나 버릴 수 있는 것이 아니란 말이다. 내가 원하는 사람, 사랑하는 사람, 섹스하고 싶은 사람과 원할 때 할 수 있는, 오롯이 '내 것'이란 말이다.

웃긴 건 그날 밤 정작 그는 나를 '지켜주지도' 못했다는 것이다. 손만 잡고 자자던 그가 한참 잠 못 이루고 뒤척이더니 은근슬쩍 곁으로 다가왔으니까.

그 말을 하는 남자들의 속내에 '나는 내 욕망을 참을 만큼 너를 아끼고 있다!'라는 자부심과 정의감, 순진함이 깔려 있음은 부정할 수 없지만 또 그 깊은 이면에 여자의 성은 남자가 소유하는 것, 남자에게 속한 것이라는 오래된 편견이 작용했음은 아무리 생각해도 불쾌하다.

페미니스트적이라고? 그러기에 여자의 심리에는 모순이 있다. 내가 남자와의 첫 섹스 때 들었던 가장 섹시한 말은 오랜 키스 뒤에 나를 확 끌어안고는 던진 "오늘 집에 못 가요"였다. 아무 말도 없이, 아무런 신호도 없이, 집에 들어서자마자 미친 듯이 깊은 키스를 퍼부어대던 남자를 잊을 수 없다는 여자도 있고, 멀쩡하게 마주 앉아 차를 마시다가 "너랑 자고 싶어"라고 말하는 남자에게 먼저 키스를 했다는 여자도 있다.

자칫 잘못 했다가는 여자한테 뺨 맞기 좋은 이런 상황이 종종 여자들에게 더없이 낭만적이고 섹시하게 다가오는 이유는, 그들이 눈앞의 그녀를 욕망하고 원한다는 사실을 당당하게 표현했기 때문일 것이다. "오늘 집에 안 들어가면 안 돼?"보다는 "너 오늘 집 못 간다", "가져도 돼?" 혹은 "널 지켜줄게"가 아닌 "너랑 자고 싶어 미치겠어"가 여자를 흥분시킨다.

내가 좋아하는 남자에게 성적으로 어필한다는 것, 나의 매력이 그의 이성을 마비시키고 스스로 통제하지 못하게 한다는 사실이 섹시하게 느껴지는 것일 게다.

그러니까 섹스하기 전에 당신이 하는 말은 무척 중요하다는 말이다. 그 밤 쌩하게 쳐낸 그 아이는 그날 나와 자지 못한 이유를 이제는 좀 알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