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김지현의 에로틱 칵테일

(95) 여자가 섹스에 있어 굴욕당할 때

행복을 만드는 사람들 2011. 2. 21. 18:54

(95) 여자가 섹스에 있어 굴욕당할 때

너무나 부끄럽고 민망해서 지금 생각해도 얼굴이 붉어지는 섹스 관련 추억(?)이 몇 개 있다. 내 인생의 첫 섹스, 꽤 경험 많은 연상의 애인이었던 그가 한창 섹스 중에 말했다. "……좀 조여봐." 지금도 내 다리는 그의 허리를 안고 있는데, 도대체 뭘 조이라는 거지? 잠시 멍해 있던 나는 그의 허리를 더욱더 힘주어 껴안았다. 두어 번의 연애를 거친 후에야 뭘 조여야 했는지 알게 되었으니, 지금 생각해도 민망한 일이다.

처음으로 오랄 섹스를 받아보았을 때도 만만치 않다. 온몸 구석구석을 애무해주는 그의 '손길 아닌 손길'에 제대로 황홀경을 느낄 때였다. 문득 그가 말했다. "너 아까 씻고 오지 않았어? 아직 남아 있는 거 같아." 아, 그는 여자가 너무 흥분하면 아랫도리가 심각하게 젖어온다는 사실을 몰랐던 것인가? 황홀경이고 나발이고, 그대로 화장실로 직행해서 나오지 않았던 기억이 오랫동안 잊히지 않는다.

섹스에 대해 슬슬 알아갈 때 만났던 남자도 마찬가지다. 그날 따라 왜 그렇게 흥분했는지 나도 알 수는 없지만, 섹스 중에 그가 몸짓을 멈추더니 말하는 거다. "너 혹시 포르노 봤어? 신음 소리가 왜 이렇게 과해?" 세상에서 가장 흥분한 여자였다가 가장 천박한 여자로 전락했던 순간, 그 기억도 참으로 굴욕스럽게(?) 남아 있다.

그러나 그중에서도 가장 큰 굴욕은 따로 있다. "오늘 오빠랑 같이 있고 싶다." 용기 내어 처음으로 말해본 순간, "나 좀 피곤한데, 오늘은 그냥 집에 가자". 으악! 혹시 그 동안 여자에게 이렇게 말해본 남자가 있다면 반성 좀 해야 한다.

여자가 먼저 '섹스하자'고 말하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밝히는 여자로 보이는 건 아닐까, 날 헤프게 생각하진 않을까, 내가 너무 적극적이라고 부담스러워하진 않을까…… 오만 가지 생각을 하다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진심으로 같이 있고 싶고, 간절하게 그의 품에 안기고 싶고, 따뜻한 몸의 위로가 필요해서 어렵게 꺼내는 말이다.

물론 남자들도 섹스가 안 땡기는 날이 있을 것이다. 전날 잠을 잘 자지 못했다거나 상사에게 심하게 깨졌다거나 아무것도 하지 않고 집에서 혼자 쉬고 싶다거나 굿섹스를 할 컨디션이 안 된다거나…… 그래서 그랬을 것이다. 남자들은 심플하니까, '오늘 못 하면 다음날 하면 되지' 싶었을 것이다.

그러나 여자는 온몸으로 거절당한 느낌이다. '여자인 내가 먼저 말했는데' 하는 자존심 문제는 물론이요, 기껏 낸 용기가 무색하여 스스로가 바보 같고 한심하게 느껴지고, '이 남자, 날 사랑하긴 하나?' 하며 애정까지 의심하게 된다. 온 몸과 마음으로 위축되어 그 다음 섹스도 피하고 싶다.

그러니까 아무리 피곤하더라도, 여자가 먼저 말할 때는 절대 거절하지 말자. 여자들에게 섹스는 그렇다, 어쩔 수 없이 소심해지고 부끄러워지고 감정-사랑과 연결될 수밖에 없다. 그리고 잘 잊히지도 않는다. 그러니까 웬만하면 굴욕 따위는 안겨주지 말자. 게다가 그럴 때 여자가 원하는 건 육체적인 섹스보다는 감정적인 섹스일 때가 많으니, 밤새 꼭 껴안아주는 것만으로 충분할 수도 있으니 너무 겁내지도 말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