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6) 섹스와 사랑을 헷갈리지 좀 마!
그는 나에게 오늘 무슨 일이 있었는지, 일하는 건 좀 편해졌는지, 복잡했던 일은 해결됐는지 물어보는 법이 없다. 술잔을 사이에 두고 급히 술을 마시다 보면 그는 기분이 좋아져서 말이 많아진다. 그럼 나는 그의 이야기를 다 잘 듣고 있고 모두 이해하는 척 고개를 끄덕이며 웃어준다.
집으로 돌아가는 차 안, 다시 별다른 대화가 없다. 썰렁하고 서먹하다. '그래, 역시 이 남자는 더 이상 나를 사랑하지 않아. 정리해야겠어' 속으로 결심하며 문을 열고 집으로 들어서는 순간!
그는 오랫동안 굶주렸던 것처럼 미친 듯이 키스를 해온다. 그리고 급히 내 옷을 벗기고 나를 안아 침대에 누인다. 마치 나랑 자고 싶어 죽겠는 것처럼, 그리고 마치 진심으로 나를 사랑하는 것처럼. 그가 나를 사랑한다고 느끼는, 유일한 순간.
종종 그런 남자를 만날 때가 있다. 딱히 맞다고 느낄 게 없는 남자. 공통분모도 없고 세상을 사는 가치관도 다르고 대화 거리도 다르고 이상형도 다르다. 그런 우리가 왜 연인이 되었는지는 잘 모르겠다. 이런 남자와는 주로 섹스 먼저 하고 딱히 서로 싫지 않아서 사귀게 되는 경우가 많다. 그들의 공통점은 단 하나다. 나와의 섹스를 좋아한다는 것.
그런데 문제는 그들은 그 사실을 잘 인지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몸이 흥분되고 같이 자면 다른 여자보다 짜릿하고 또 자고 싶다고 느끼는 것을 '사랑'이라고 착각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의 관계에 별다른 문제가 없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여자들은 그 미묘한 차이를 빨리 알아챈다. 함께 있을 때 나를 바라보는 눈빛, 언제든 주저 않고 달려오고 싶어하는 간절함, 함께 별 시답잖은 이야기를 나누는 와중에도 전해오는 유쾌함과 따뜻함. 여자에게 사랑이란 이런 것이기 때문이다. 이런 것들이 배제된 채 급하게 키스를 하고 애무를 해오는 남자에게 '사랑'이라니! 그들이 먼저 깨달아준다면 정말 고마울 텐데 말이다. "나는 이 여자와의 섹스를 좋아하는 거지, 이 여자를 좋아하는 게 아니야"라고.
딱히 헤어질 이유도 없고 심지어 이별하는 과정이 귀찮아서 그냥저냥 관계를 이어나가고 있는 현실에 사실 좀 지쳤다. 이제 그에게 그만 놔달라고 말하고 싶다.
넌 나를 사랑하는 게 아니야. 내 몸을 사랑하는 거지, 나와의 섹스를 사랑하고, 너를 애무해주는 내 방식을 사랑하는 거야. 잠잘 때나 외로울 때만 생각나는 것. 그런 건 사랑이 아니야. 차라리 빨리 헤어지고 진짜 사랑할 만한 사람을 적극적으로 찾자. 우리 서로 몸만 맞는 게 아니라 영혼과 마음과 생각이 모두 맞는 사람, 함께 있으면 사랑받는다는 충만감으로 굳이 섹스하지 않더라도 오르가슴을 느낄 수 있는 사람을 만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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