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지현의 에로틱칵테일] (107) 애무보다 자극적인 말들
"너 섹스할 때 '까놓고' 말하는 게 얼마나 무서운 일인지 알아?"
지난 주 칼럼을 본 남자 지인이 반론을 제기했다. 서로의 취향이나 욕구에 대해 낱낱이 말하는 게 민망하고 낯부끄러운 일이라는 건 인정하지만 무섭다니?
그의 사정은 몇 년 전 나이트에서 만난 여자와의 하룻밤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나이트에서 부킹에 성공하고 2차로 포장마차에서 소주 한 잔을 더 걸치고 "집에 가기 시간도 애매한데 자고 갈래?"까지 성공한 것은 좋았다. 그런데 정작 모텔에 들어간 그녀의 자세가 마치 '네가 그리도 간절하게 바라니 피곤하지만 그래 내가 한번 해주마, 어디 한번 해봐라' 식이었단다.
안 그래도 '작업' 거느라 밤을 새우다시피 한 그는 여자의 이런 반응에 의욕 상실, 짜증 만땅이었으나 그래도 어렵게 잡은 기회를 놓칠 수는 없었다. 그런데 슬슬 몸을 움직이자 어느 순간 그녀의 태도가 급변하더라는 것이다. 정상위로 서서히 스피드를 올려가고 있는 그 순간, 한껏 달아오는 여자가 대뜸 한 마디를 던졌다. '자세를 바꾸자'는 뜻을 노골적인 표현했다는 것이다.
남자들끼리, 그것도 군대에서나 쓸 만한 속어를 멀쩡하게 생긴 여자가 쓰다니. 그의 당혹감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조금씩 흥분하기 시작한 그녀가 외설물에서나 볼 수 있는 메가톤급 비속어들을 외쳐댔기 때문이다.
여자의 입에서 나오리라고 상상해본 적 없는 원색적인 단어들에 그는 놀라고 당황할 수밖에 없었고, 결국 몇 번 움직이지도 못하고 사정해버리고 말았다.
그는 "아직도 실망감이 가득한 그녀의 표정을 잊을 수가 없다. 그녀가 얼마나 무서웠는 줄 알아? 그날은 내 인생 최악의 섹스 중 하나였어" 하며 씁쓸하게 웃었다.
부끄럽고 굴욕스러웠다고 말하지만 사실 그녀의 말들이 너무 자극적이던 건 아닐까. 사춘기 시절 입 밖으로 내는 것만으로 흥분되던 단어들, 화장실 문 여기저기 씌어져 있던 말들, 남자들끼리만 공유할 수 있던 언어들이 그녀의 입에서 나오는 순간, 마치 처음 여자의 속살을 마주할 때처럼 오묘하고 신비했을지도.
'성생활에서 솔직하자!'고 주장한 나로서도 그녀가 한 말들을 입 밖으로 꺼내본 적이 없다. 어려서부터 그런 말은 천박한 사람들이나 하는 것이야, 라고 교육받았기 때문일 것이다. 그런데 생각해보니 섹스할 때 "너 창녀 같아"라는 말을 듣고 싶다는 J양도 있고, "오빠 변태 같아"라는 말만 들으면 흥분돼서 견딜 수 없다는 B군도 있고, 아내에게 더티 슬랭을 들어보는 게 평생 소원이라는 Y군도 있다.
각자의 취향 문제이기도 하겠지만 또 한편으로 우리에겐 섹스에 있어 '천박해지고' 싶은 욕구가 있는지도 모르겠다. 그 어떤 체위, 애무보다도 강하게 자극되는 말들이 분명히 있다. 결국 성과 관련된 속어들도 우리 스스로 정한 금기 아닐까. 그렇기 때문에 더 자극적이고 흥분되는 건 아닐까.
무척 용기가 필요한 일이긴 하겠지만 내가 그런 말을 꺼냈을 때 파트너의 반응이 궁금하긴 하다. 그는 흥분할까, 아니면 무서워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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