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김지현의 에로틱 칵테일

(108) 하고 싶은 이성은 분명 따로 있다

행복을 만드는 사람들 2011. 4. 4. 20:59

[김지현의 에로틱칵테일] (108) 하고 싶은 이성은 분명 따로 있다.

 

 

"나 하우스메이트를 구하기로 했어, 남자로!" J양이 선전포고를 했다. 며칠 전 누군가 화장실

창문을 비틀어 연 흔적을 발견한 뒤로 잔뜩 겁을 먹은 것이다. 그럼에도 몇몇은 우려를 나타냈다.

아무리 방 2개를 따로 쓴다고 해도 안 좋은 일이라도 생기면 어떻게 하냐, 10년 동안 혼자 살았던 네가

여자도 아닌 남자랑 같이 살 수 있겠냐, 변기 뚜껑은 항상 올라가 있을 거고 화장실에 민망한 언더헤어가

여기저기 떨어져 있을 거다, 남자 볼일 보는 소리 듣는 건 또 얼마나 불편하겠냐…….

나는 재미있을 거라고 찬성했다. 집에 들어오면 누군가 불 켜고 기다리고 있고, 늦은 저녁에 혼자 못 먹었던 족발에 맥주 나눠 먹으며 수다 떨 수 있고, 택배 아저씨 올 때 든든하기도 하고, 잘 막히는 변기를 고쳐달라고 하거나 액자를 걸 못을 박아달라고 할 수도 있었다. 게다가 젊은 남녀가 편하게 뒹굴거리며 텔레비전을 보다가 갑자기 눈빛이 짜르르 통하면서 키스를 하고 섹스를 한다?

생각만 해도 짜릿한 일이었다. J양이라고 '옥탑방 고양이'나 '미술관 옆 동물원' 같은 동거 스토리를 재현하지 말라는 법 없었다.

곰곰이 생각하던 J양은 타협점을 찾았다. 공신력 있는 온라인사이트를 통해 딱 한두 달 짧게 살 동거인을 구한 것이다. 그리고 일주일 뒤, 그녀에게 전화가 왔다. "야, 로맨스는 무슨 로맨스! 얼굴 안 마주치려고 피해 다니고 있다. 빨리 한 달이 지났음 좋겠어!"

그녀의 사정이 궁금해 그날 밤 당장 그녀의 집에 찾아갔다. 그리고는 막 귀가한 그녀의 하우스메이트를 보고야 말았다. 그녀보다 6살 어리다는 그는, 그녀보다 서너 살은 많아 보이는 데다가 운동이라고는 평생 해보지 않은 듯 여기저기 두둑한 살들에, 며칠 동안 안 감은 기름진 머리에, 사람의 눈길을 피하며 말하는 나쁜 습관을 가진, 전형적인 비호감 청년이었던 것이다.

불순한 동기로 하우스메이트를 구한 건 아니지만 이성간의 짜릿한 로맨스나 성적 긴장을 기대한 J양의 좌절은 충분히 이해하고 남았다. "면접이라도 보지 그랬어?" "단기로 살 곳을 구하는 사람은 얘밖에 없었단 말이야!"

실제로 그런 남자들이 있다. 무인도에 단둘이 남더라도 죽어도 섹스하고 싶지 않은 남자류. 외모가 잘나고 못나고의 문제가 아니다. 당기고 안 당기고의 문제다. 얼마 전 소개팅을 통해 만났던 그 남자 역시 그랬다. 외모나 조건이나 성격이나 그럭저럭 나쁘지 않았던 그가 두 번째 만남 이후 갑자기 내 손을 움켜쥐고 입을 맞추려고 할 때, 나는 그를 거칠게 밀어내고 말았던 것이다. 아무리 생각해도 그 이유를 알 수 없다. 이성은 '오케이' 하는데 몸이 거부하는 것이다.

첫인상에 너무 많은 편견을 가진 것일까, 아직 그들에게 마음을 열지 않아서 그런 것일까, 좀더 속깊은 이야기를 나누며 정이 들면 자연스럽게 스킨십하고 싶은 마음도 생기는 것일까?

모르겠다. J양과 나는 좀더 몸을 믿어보기로 했다. 첫눈에 마음을 열고 싶은, 손 잡히고 싶은, 키스하고 싶은, 함께 뒹굴거리며 TV를 보고 싶은, 우리 취향의 남자가 어딘가에는 남아 있으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