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김지현의 에로틱 칵테일

(110) 여자에게도 '동영상'이 필요하다

행복을 만드는 사람들 2011. 4. 19. 22:40

[김지현의 에로틱칵테일] (110) 여자에게도 '동영상'이 필요하다.

 

 

내가 처음 '야동(야한 동영상)'을 접한 건 중학교 2학년 때였다. 당시 고등학생이던 오빠가 몰래 보던 비디오테이프를 찾아내서 아무도 없는 사이 틀어본 것이다.

"너무나 징그럽다" "어떻게 연인이 그런 '짓'을 하는지 역겹다" "혐오스러워서 못 보겠더라"…… .보통 포르노를 접한 여자들의 첫 감상이 이런 데 비해 나는 비교적 흥미진진하게 감상했다. 내 생에 첫 야동이 하필 예쁜 그림톤으로 그려진 일본 성인 애니메이션이었기 때문이다. 묘한 기분에 어쩔 줄 몰라하면서도 정지 버튼을 누르지 못하던 기억은 아직까지 생생하다.

사실 나도 종종 야동을 찾아 본다. 아마 오래 전 남자친구가 '함께 보자'고 졸랐던 때부터였던 것 같다. "민망해, 꼭 이거 봐야 해?" 하며 튕기다가 어느 순간 흥분해서 근래 들어 최고로 찐한 섹스를 했던 기억이 난다.

남자들처럼 나 역시 야동을 통해 홀로 욕구를 충족시키거나 섹스와 애무의 노하우를 배우기도 하지만 뒤끝은 매번 찜찜하다. 야동에 나오는 여자들은 항상 섹스에 굶주려 있고 남자들의 손길에 열광하고 과도한 신음과 리액션을 취한다. 어려서부터 그런 동영상을 보고 자란 남자들이 여자와 섹스에 왜곡되는 것은 당연한지도 모르겠다.

그래서일까. 내가 특별히 아끼는 야동이 하나 있다. 벌써 몇 년째 소장하고 있는 동영상인데, 긴 생머리의 동양 여자와 외국 남자가 섹스하는 모습을 꽤 길게 담은 영상이다. 한 다섯 가지쯤의 체위가 나오고 '노모'이며 '최고의 모델 풀버전 어쩌구저쩌구' 하는 제목에 딱 맞게 아주 예쁜 가슴과 몸매를 지닌 여자가 등장한다.

이 야동이 인상적인 이유는, 보통 남자의 얼굴은 감추고 여자의 몸에 초점을 맞춘 타 동영상과 달리 남자와 여자를 골고루 보여주기 때문이다. 게다가 남자가 종종 여자의 얼굴을 바라보며 리드미컬하게 움직이며 꽤 진지하게 눈을 맞춘다. 이 장면만 나오면 나는 그가 내 얼굴과 눈을 마주치며 내 몸 안에서 움직이는 듯 소스라치는 것이다.

포르노가 폭력적이고 왜곡되고 갖가지 성과 관련된 사회적 문제를 일으킨다는 의견에는 기본적으로 찬성하지만 또 한편으로 절대 이 산업이 없어지지 않으리라는 것도 안다.

나는 이제 좀 다른 야동이 나왔으면 좋겠다. 적나라하고 자극적이면서 과장되거나 불쾌하지 않은, 그러니까 여자도 아무렇지 않게 즐길 수 있는 포르노 말이다. 남자들이 실제 섹스에서 여자들이 그렇게 가슴이 크지 않고 리액션이 강하지 않고 신음 소리가 작다는 것을 알게 되는 것처럼 여자들도 야동 속 남자의 그것과 꼭 같지만은 않다는 것도 알아야 하지 않을까. 게다가 숙련(?)된 조교들이 시범 보이는 섹스만큼 빨리, 효과적으로 노하우를 익히는 방법도 없다.

어차피 필요악이라면 남녀 골고루 필요한 '악'이었으면 좋겠다는 생각. 아무래도 내 욕심이 너무 큰 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