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지현의 에로틱칵테일] (111) '동영상'에 대처하는 우리들의 자세
얼마 전 칼럼을 쓰기 위해서 여자 지인들에게 야동에 대한 추억을 들려달라고 조른 적이 있다. 언제 처음 야동을 봤는지, 얼마 만에 한 번씩 보는지, 왜 보는지, 안 보면 왜 안 보는지…. 이런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저절로 남자친구와 남편의 야동으로 주제가 옮아갔다.
"남친 자취방에 갔다가 야동 폴더를 발견한 거야. 열어서 구경하고 있는데 남자친구가 들어온 거야. 얼마나 민망해하던지. 달래주느라 혼났다." 김양이 말했다.
그녀의 쿨한 행동에 깜짝 놀랐다. 화를 낸 것도 아니고 달래줬다고? 민망해하는 것을 감싸줬다고?
나도 옛 애인의 야동을 우연히 목격한 적이 있다. 헤어졌다 만나기를 반복하던, 지리멸렬했던 애인. 그날은 내가 긴 출장을 다녀온 날이었을 것이다. 시차 적응에 잠들었다 깼다를 반복하는 와중에 어렴풋이 그가 컴퓨터 앞에 앉아 있는 모습이 보였더랬다.
며칠 뒤 호기심에 그가 열어본 컴퓨터 목록을 열어보았다.(왜 남자들은 컴퓨터에 '히스토리' 기능이 있다는 것을 잊어버리는지 모르겠다.) 몇 개의 포르노사이트와 팝업창이 우르르 떴다.
당시 나는 화가 나고 자존심이 상해서 견딜 수가 없었다. 우리는 2박3일 동안 하루에 한 번씩 섹스를 했고 나는 그의 민감한 육체를 잘 달래주었으며 내가 오르가슴을 너무 빨리 느껴서 중간에 맥이 풀린 것 빼놓고는 꽤 괜찮은 섹스들이었다. 그런데, 그런데 왜 그는 밤에 몰래 포르노사이트를 뒤지고 있었을까. 그때 내 자존심에 입은 상처와 그에 대한 배신감은 그와 헤어진 뒤로도 꽤 오랫동안 남아 있었다.
내가 이 이야기를 하자 지인들은 오히려 나를 이상한 눈으로 바라봤다. "너도 참 쿨하지 못하다, 남자들은 너와의 섹스가 불만족스러워서 야동을 보는 게 아니야. 애인이 있건 없건 너도 젊고 잘생긴 아이돌 가수들 보면 설레고 좋잖아. 남자들에겐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닌 거야. 다만 여자는 감정적으로 자극받고, 남자는 육체적으로 자극받는 거지. 그건 스스로 아무리 노력해도 조절할 수 없는 거잖아. 게다가 남자는 여자보다 훨씬 본능적인 인간이니까."
그렇지만 나는 아이돌그룹을 보며 자위를 하지는 않는단 말이다! 어쩌면 나는 야동이나 포르노 속 그녀들을 경쟁자로 생각하고 있었는지 모르겠다. 나에게 성욕을 느끼는 동시에, 영상 속 그녀들의 큰 가슴과 얇은 허리, 자연스러운 움직임, 충만한 표정들을 보면서 자극받는 애인을 도무지 자연스럽게 받아들일 수가 없었다. 여전히 나는 사랑하는 남자의 눈에는 나 말고 어떤 여자도 섹시해 보이거나 섹스하고 싶다고 느끼지 않길 바란다.
"나는 애인이 야동 보면서 섹스 기술이나 더 배워왔으면 좋겠다." "나는 남편이 밤에 귀찮게 조르지 말고 야동 보고 혼자 해결했으면 좋겠어."
지인들의 우스갯소리에 와르르 웃고는 넘어갔지만 종종 야동 찾아 보는 여자로서 영상 속 그녀들을 의식하지 않을 자신은 없다. 내가 아무리 노력해도 야동 속 그녀들처럼 '섹스 머신'이 될 순 없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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