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지현의 에로틱칵테일] 날 사랑하는 거니? 자고 싶은 거니?
여자가 있다. 어느 날 술을 마시다 평소 호감 있던 남자와 단둘이 남게 됐다. 술에 취한 남자가 취중진담처럼 여자에게 좋아한다고 사귀자고 말한다. 그리고 두 사람은 그날 밤을 함께 보낸다. 다음날 남자는 연락 한 번 없이 잠수를 타다가 느지막히 문자 한 통을 보낸다. "곰곰이 생각해보니 내가 너를 좋아한 건 아닌 것 같다. 미안하다." 여자는 황당하고 자존심 상하지만 이제 와서 어쩔 수도 없다.
참 익숙한 시추에이션이다. 지난번에도 이야기했듯이 남자들은 '성욕'과 '애정'을 헷갈리는 경향이 있다. 남자들은 말한다. "그녀 옆에 있으면 쿵쾅쿵쾅 가슴이 뛰어!" 맞다, 여자도 안다. 처음 자는 순간, 꼭 껴안은 그의 가슴에서 심장 뛰는 소리가 고스란히 느껴진다. 쿵쾅쿵쾅쿵쾅쿵쾅...... 아, 어쩌면 좋아, 이 남자 나를 이렇게 좋아하나봐.
그리고 섹스를 하고 난 뒤에 여전히 그의 품에 안겨 있으면, 저런...... 쿵쾅거리던 소리는 어디 갔을까. 심장 소리는커녕 얕게 코고는 소리가 이어진다. 그리고 아침이면 간밤의 고백이 무색하게 눈을 피하며 도망치듯 사라지는 남자.
이런 경우를 몇 번 겪다 보니 이제는 누군가 "당신이 좋아"라고 말할 때면, 나는 진지하게 그들을 향해 묻고 싶어진다. "솔직히 말해봐. 나랑 자고 싶은 거니, 아니면 진짜 나를 좋아하는 거니?"
물론 남자들의 입장도 이해한다. "널 좋아하진 않지만 너와 자고 싶어"라고 말했다가는 뺨이나 얻어맞을 게 뻔하고, 여자 뒤꽁무니 쫓아다니며 자달라고 조르는 남자가 되고 싶지도 않을 것이다. 그렇다고 간만에 성욕을 해소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를 놓칠 수도 없을 것이다. 혹 어쩌면 그 순간에는 진심으로 그녀가 좋다고 생각했을 수도 있다. 그러나 어쩌랴. 남자들은 원래 자고 나면 흥미가 떨어지는 독특한 종족인 것을.
간밤에 사랑받고 관심받는 것에 흔들려 어렵게 몸과 마음의 문을 열었던 여자들만 억울한 거다. 차라리 술이라도 진창 마시고 눈떠보니 낯선 남자가 누워 있는 상황이라면, 혹 속내 뻔한 원나잇 스탠드라면 자존심은 안 상하지.
쿨하게 "나도 널 좋아한 건 아니었어"라고 답문을 보내고 난 뒤 여자들은 자책에 빠지는 거다. 왜 이다지도 남자 보는 눈이 없을까, 그런 수작에 왜 넘어갔을까.
다른 방법은 없다. "간만에 섹스를 하니까 역시 몸이 상쾌해"하며 자위하든가, 남자들의 거짓말을 알아차리는 기술을 익히든가, 그날 밤 남자에게 딱 취할 것만 취하고 먼저 "미안. 네 섹스 기술이 별로라서 사귀진 못하겠다" 문자를 보내든가.
어찌 보면 거짓말까지 해가며 혹은 자신의 마음을 속여가며 성욕을 채워야 하는 남자들의 생리란 또 얼마나 불쌍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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