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김지현의 에로틱 칵테일

(112) 술 없이 남자 만나기

행복을 만드는 사람들 2011. 5. 1. 17:18

[김지현의 에로틱칵테일] (112) 술 없이 남자 만나기

 

최근 들어 소주든 맥주든 입에 대지 않은 지 세 달째에 접어들고 있다. 여자 중에 흔치 않은 애주가였던 만큼 "절대 술 마셔서는 안 된다"는 의사의 진지한 충고와 일의 능률이 바닥까지 떨어질 만큼 유약해졌다고 실감하지 않았더라면 절대 술을 끊지 않았을 것이다.

사람들과 어우러져 술 마시는 게 일상의 가장 큰 기쁨이었던 만큼 금주의 부작용은 컸다. 술 참기 어려울까봐 아예 술자리에 나가지 않았고, 이 이야기 저 이야기 하며 웃고 떠드는 유쾌한 기분을 만끽할 수 없으니 전반적으로 기운도 다운됐다.

그러나 가장 큰 문제는 따로 있었다. 얼마 전 마침 평소 호감 있던 남자에게 연락이 왔다. 만나면 소주 서너 병 곁들여서 인생 이야기 나누던 남자였다. 말도 잘 통하고 서로 취향도 맞아 앞으로 좀 더 만나면 왠지 인연이 될 것도 같기도 했었다. 우리는 이태리식당에 가서 스파게티를 먹고 커피숍에 갔다. 그런데 아, 우리가 이렇게나 썰렁한 사이였던가, 이 남자는 원래 이렇게 심심하고 외모를 지닌 남자였던가. 인연이 되기는커녕 우리는 왠지 모를 어색함에 뒤도 안 돌아보고 헤어졌다.

어쩌면 이 모든 게 술 탓이다. 내 섹스 생활을 되돌아보았을 때, 단 한 번도 맨 정신으로 남자와 첫 섹스를 해본 적이 없다! 남자들이 술 한잔 걸쳐야 "오늘 집에 가지 마라" "같이 있고 싶다"고 말할 수 있는 용기가 생기는 것처럼 여자들도 맨 정신으로 '자고 싶다'는 본능을 표현하기 어렵다. 이를테면 살짝살짝 손길을 스친다거나 발그레진 얼굴에 촉촉한 눈빛으로 상대를 바라본다거나 취한 척 어깨에 기댄다거나 콧소리를 낸다거나…… 이런 유혹의 몸짓을 알코올 기운 없이 하기란 정말 쉽지 않다는 것이다.

내가 이런 고민을 털어놓았더니 애주가 여자들은 꽤 공감했다. "남자친구랑 첫 데이트할 때 한낮에 서로 필이 통해서 키스하고 진도가 막 나간 적이 있었거든. 근데 문득 이 남자 왜 이렇게 어색하게 굴지, 그 다음에는 어떻게 행동해야 하지? 하면서 집중은 안 되고 느낌은 안 오고 자꾸 딴 생각 나는 거야. 심지어 애무를 하는데 간지러워서 키득거리기도 했다니까."

물론 술기운을 빌려 섹스에 임하던 내 습관에는 부작용들도 있었다. 마음에 없던 남자와 섹스하고 "아차, 실수했구나!" 하거나 너무 취해서 굿섹스였는지 아니었는지 전혀 기억나지 않거나 서로 취해서 열심히 시도만 하다가 어색하게 모텔 방을 나서거나….

그러나 대게 평소 흠모하던 사람과 연애를 시작하는 계기가 되거나 혹은 사귀는 사이지만 발전이 없던 사람과 한 단계 나아갈 수 있었다. 몇 번의 만남 이후 유야무야 헤어진 남자들을 떠올려보면 모두 술을 전혀 못 마시는 남자들이었으니. 상황이 이러한 만큼 나는 불안해졌다. 어쩌면 평생 섹스를 즐기지 못하는 건 아닐까?

그럼에도 애써 몇 개월 성공한 금주를 포기할 순 없다. 가능성은 있다. 처음에는 그토록 힘들었던 금주가 지금은 꽤 참을 만하고 술자리에서 음료수만으로 술 취한 것처럼 노는 것에 서서히 익숙해지고 있으니, 조금만 더 견디면 맨 정신으로 "나 오늘 너랑 자고 싶어"라고 말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오히려 취하지 않은 상태에서 내 입 밖으로 뛰쳐나온 말들이, 술이 아닌 마주 앉은 남자의 매력에 흠뻑 취하는 상황이 훨씬 섹시할지도 모르겠다.

그날이 조금이라도 더 빨리 오기를 기다리며, 나는 오늘도 술을 참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