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김지현의 에로틱 칵테일

(114) 섹스의 본질을 기억하고 있습니까?

행복을 만드는 사람들 2011. 5. 18. 16:57

[김지현의 에로틱칵테일] (114) 섹스의 본질을 기억하고 있습니까?

 

우리는 첫 배움의 중요성을 이야기하고 있었다. 처음 술을 배울 땐 어른한테 긴장한 상태에서 배워야 음주 매너를 바르게 익힐 수 있고, 첫 담배도 친구들이랑 피운 사람과 선배 앞에서 어렵게 배운 사람은 예의가 다르다…. 갑자기 한 언니가 외쳤다. "첫 섹스도 마찬가지야!" 첫 섹스의 의미나 이후 성생활에 미치는 영향 같은 것은 익히 알고 있겠지만 아무래도 담배나 술과는 좀 다르지 않을까?

이야기인즉슨 결혼을 전제로 만나고 있는 그녀의 '나이 든' 애인에 대한 것이었다. "얼마 전 섹스를 하고 꼭 껴안고 있는데 갑자기 가슴이 벅차오르는 거야. 그래서 그에게 말했지. '이렇게 좋은데, 우리가 어떻게 헤어질 수 있을까?' 그 순간 그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더니 버럭 화를 내는 거야. 그럼 '이게' 좋아서 나랑 만나는 거냐, 너에겐 자는 게 제일 중요하냐, 그럼 나는 엔조이인 거냐, 네가 그렇게 '밝히는 여자'인지 몰랐다, 실망이다…… 너무 당황스럽고 민망해서 '그럼 헤어져!' 하고는 돌아나왔어."

그녀 약혼자의 반응이 우리에게도 무척 당황스러웠다. 나 역시도 남자에게 그런 말을 한 적이 있다. "이렇게 좋은데, 어떻게 헤어져?" 보통 헤어지자 운운하며 싸우고 난 뒤거나 격렬한 섹스 이후 감정이 북받쳐올라서, 또 혹은 그의 품 안에서 '내가 진짜 이 남자를 많이 좋아하고 있구나' 하고 생각할 때였다. 내가 그 말을 꺼낼 때마다 애인들은 나를 더욱 힘주어 안아주곤 했다. 결국은 "너를 사랑하는데, 우리는 섹스도 잘 맞으니까 더 사랑해. 분명 너의 섹스는 매우 훌륭해" 이런 뜻일 터이니 남자들에게는 꽤 자랑스러운 일이기도 할 것이다.

"그의 나이가 이제 마흔셋이잖아. 세대 차이가 나는 건지 뭔지, 정말 보수적이야. 섹스라는 건 사랑하는 연인끼리 너무나 사랑해서 그걸 육체를 통해서 더 깊이 나누고 싶어하는 거라는 거지. 그렇게 소중하고 가치 있는 걸 어떻게 그렇게 쉽게 표현할 수 있냐는 거야. 그래서 내가 그렇게 섹스에 대해서 쉽게 표현하는 게 싫대. 천박하고 싸구려 같대,"

물론 그가 과도하게 보수적이라는 사실에는 우리 모두 동조했다. 그런데 생각해보면 그의 말이 틀릴 건 하나도 없다. 섹스라는 건, 실제로 연인끼리 더 깊은 사랑을 나누기 위해, 혹은 사랑하는 사람끼리 가족을 갖기 위한 것 아니었던가. 떠올려보면 사랑하는 애인과 바르바르 떨면서 섹스를 하던 순간, 더 깊이 안기고 싶어서 자꾸만 그의 속을 파고들던 섹스가 선연한데, 요 몇 년간 나에게 섹스는 '욕구를 채우는 것' '쾌감과 쾌락을 얻는 것' '즐기는 것'이었던 것이다.

"그러니까 이 모든 게 내가 첫 섹스를 잘못 시작해서일지도 모른다는 거야. 친구들이 모두 첫 경험을 한 상태였고 그게 무척 조바심났거든. 그래서 바에서 만난 남자랑 아무렇지 않게 '해치워'버렸어. 사귀는 사람도, 사랑하는 사람도 아니었어. 그냥 '즐긴' 거였지. 그 뒤로 나에게 섹스에 대한 편견이 생긴 것 같기도 하고."

아무래도 그녀는 남자친구에게 먼저 화해의 손을 내밀 것 같다. 그가 불편할 만큼 보수적인 건 사실이지만 그 이면에는 그녀를 너무나 사랑하는 마음, 더 소중하고 깊은 사랑을 나누기 위해서 섹스에 임하는 숭고한 마음이 깔려 있지 않은가. 두 사람은 아마도 잘 맞춰나갈 것이다. 결국에는 더 사랑하겠다는 것이니까. 사랑은 모든 걸 다 용서할 수 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