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김지현의 에로틱 칵테일

(116) 옛 추억과 재회하는 일이란?

행복을 만드는 사람들 2011. 6. 2. 22:05

[김지현의 에로틱칵테일] (116) 옛 추억과 재회하는 일이란?

 

그놈의 '카카오톡'이라는 게 참 무섭다. 내 연락처에 있는 사람들은 물론이요, 상대방 연락처에 내 번호가 저장돼 있으면 저절로 친구 목록에 뜨니, 프로필 사진을 보면서 '도대체 이 사람이 누구지?' 한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그런데 옛 애인이 버젓이 친구 목록에 뜬다면?

결혼을 앞둔 여자친구가 옛 애인이랑 카톡을 하다가 나에게 딱 걸렸다. 대학 때부터 7년간 징글맞게 붙어다니던 애인 사이, 세월 따라 서서히 관계가 식상해지더니 별다른 상처도 없이 헤어진 커플이었다.

사실 친구는 종종 그의 이야기를 꺼내곤 했다. 애인과 헤어졌을 때, 일이 잘 풀리지 않을 때, 외롭고 쓸쓸할 때, "그래도 K오빠가 나한테 참 잘해줬는데. 그 오빤 항상 곁에서 나를 잘 위로해줬지. 지금도 그가 그리워" 하고 말하곤 했다. 게다가 그는 그녀의 '첫 남자' 아니었던가. 새롭게 생긴 애인과 섹스를 할 때, 어쩔 수 없이 생각나는 그 '첫 남자' 말이다.

나에게는 첫 남자보다는 두 번째 남자가 그랬다. 나는 그를 떠올릴 때마다 죄책감이 어우러진 그리움과 애틋함, 애잔함 같은 것을 느끼곤 했다. 그는 선량하고 순수하고 지고지순한 사람이었고 그와 섹스를 하면서 비로소 '왜 사람들이 섹스를 하는지'를 알 만큼 속궁합도 잘 맞았다. 그랬던 그와 이별한 이유가 나 혼자 사랑이 완전히 지겨워지고 질려버린 탓이었으므로 그 이별이 그에게는 얼마나 잔인하고 이기적이었는지 다시금 돌아봐도 볼이 후끈거릴 정도다.

몇 년 전, 왁자지껄한 술자리에서 그와 우연히 마주쳤다. 그는 정말 한 군데도 변한 데가 없었다. 맑은 눈빛과 낭랑한 목소리, 낮은 웃음소리…… 처음에는 그리웠던 사람에 대한 반가움에 손이 벌벌 떨릴 정도였다.

그런데 술이 한두 잔이 더 들어가고 어느 순간! 그의 말이 잘 안 들리기 시작하더니만 슬슬 지루해지고 고리타분해지기 시작한 것이다. 맞아, 그는 항상 지루하고 장황하게 말을 늘어놓는 스타일이었지, 저렇게 충고하길 좋아하고 매사가 과도하게 진지한 남자였지!

기억이 '추억'으로 편집되는 것은 아주 당연한 일이다. 하지만 전날까지 세상에서 가장 나를 아껴주고 사랑해줬던 게다가 섹스의 즐거움까지 알려줬던 '아름다운 애인'이, 순식간에 '지루하고 재미없는 아저씨'로 전락해버리는 것만큼 씁쓸한 일도 없다. 단 한 번의 만남으로 나는 그의 단점과 우리의 안 좋았던 기억, 사랑이 식어버린 이유를 너무나 생생하게 상기해버리고 말았다. 그 동안 열심히 갈고 닦아왔던 '추억'을 강탈당한 것이다.

카카오톡으로 옛 애인과 "오빠 잘 지내요?" 수다를 나누며 배시시 미소를 짓는 친구에게 "안 돼, 제발 더 이상 그에게 연락하지 마. 그와 재회하는 순간, 넌 다시는 그를 떠올리며 애틋해하거나 그리워하지 않을 거야!" 하며 말리려는 순간, 그녀가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근데 말야, 생각해보면 그 오빠의 '물건'이 내가 사귀었던 모든 남자 중에 가장 별로였던 거 같아."

저런, 아무래도 그녀는 옛 애인과 만나지는 않을 것 같다. 추억은 힘이 세지만, 부실한 섹스의 추억은 글쎄…. 아무래도 기억 속에 묻는 게 새 신부에게는 맞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