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지현의 에로틱칵테일] (113) 양심이 먼저일까, 욕망이 먼저일까
초등학교 동창이자 결혼 4년차 유부남 친구 박군이 긴급하게 SOS를 청했다. "너한테 이 말을 해야 할지 말아야 할지 모르겠다만, 왜 우리 동창 중에 S 있잖아. 지난번에 우리 동창회 했을 때, 사실 우리가 같이 잤단 말이지."
박군은 전혀 눈치 못 챌 거라 생각했지만, 우리는 내심 짐작하고 있었다. 동창회 내내 S는 박군의 옆에 딱 붙어앉아서 자지러지게 웃어대면서 박군의 팔뚝을 잡았더랬다. 그렇다고 S의 주사도 아니었다. 박군을 향한 S의 마음은 초등학교 때부터 시작됐다. 반장에 운동 잘하는 박군을 좋아하는 여자아이들은 꽤 많았지만 S는 유독 심했다. 아무리 친구들이 놀려도 졸졸 박군을 쫓아다녔고 때마다 선물과 초콜릿을 바치다시피 했으니 참으로 순정적인 첫사랑이었을 것이다.
그런 S였던 만큼 아이 둘을 낳은 유부녀라고 할지라도 박군이 '나를 짝사랑하던 여자애'로 가장 먼저 기억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게다가 몸매며 얼굴이며 세련된 미시가 되어 나타났으니.
여하튼 그 둘은 그날 쿵짝이 잘 맞아 보였고 취한 S를 데리고 박군이 택시를 타는 것까지 목격했으니 두 사람의 그날 밤 일은 공공연한 비밀이었다.
"근데 말이야, 내일 S가 만나자는 거야. 나야 요새 와이프가 너무 섹스를 안 해줘서 아무나 섹스해 주면 '쌩유'지. 그런데 이 친구는 진짜 나한테 감정이 있는 것 같단 말이지. 그 뒤로도 꾸준히 연락하는데 좀 부담스러울 정도야. 섹스가 너무 궁하다 보니 그냥 하고 싶기도 하고, 그런데 내가 욕구 충족을 위해 그녀의 감정을 이용하는 것 같기도 하고. 어떡하냐."
박군의 '행복한 고민'에 확 신경질이 났다. 물론 내가 유부남 유부녀의 바람을 찬성하는 것도 아닌 만큼 도덕적인 잣대를 들이대며 훈계를 할 수도 있었다. 그러나 어쩌랴, S가 그렇게 박군을 좋아한다는데, 그렇게 같이 자고 싶다는데!
박군이 부러운 진짜 이유는 S양의 '진심' 같은 것이었다. 여자들은 남자가 나를 성적으로 욕망할 때, 나를 너무 사랑해서 '미쳐버릴 것' 같아할 때 묘하게 흥분된다. 내가 그만큼 사랑하지 않는 남자라고 할지라도 그런 남자와의 하룻밤은 짜릿하고 즐겁다. 이기적인 이야기일지 모르지만 결혼 이후에도 박군을 좋아하고 설레임을 느끼고 섹스하고 싶어하는 S의 마음은 S의 것이다.
서른을 훌쩍 넘겼다면 자신의 감정에 따라 판단하고 결과를 책임질 줄은 알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자신의 감정을 상대방에게 강요하면 안 된다는 것도 충분히 자각해야 한다. 그녀야말로 알 것이다. 박군과의 짜릿한 하룻밤이 오래 이어지지 않으리라는 것을. 오랫동안 마음에 품어왔던 첫사랑과의 로맨스는 그녀에게 선물 같은 시간일 것이다.
"그러니까 그냥 즐겨. 네가 와이프와 왕성한 성생활을 하고 있어서 욕구불만이 없다면 모를까, 니가 육체적으로 땡기고 섹스가 필요하면 '나를 좋아하는 사람'만큼 쉽고 편한 상대가 없지."
박군에게 충고를 하고 돌아서는 나로서는 둘 다 마냥 부러울 따름이었다. 오랫동안, 심지어 결혼한 이후에도 삶의 긴장을 유지할 수 있을 만큼 설레는 남자를 가진 S도 부럽고, 부담스럽고 불편하긴 하지만 원한다면 섹스할 수 있는 박군도 부럽고.
바야흐로 봄은 봄인가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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