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활 이야기

北 '황장엽 제거' 지시, 왜 작년 11월인가?

행복을 만드는 사람들 2010. 4. 21. 13:38

'황장엽 암살 지령' 북 간첩 2명 구속

 

【앵커멘트】
북한 전 노동당 비서
황장엽씨를 살해하기 위해
국내에 들어온
북한 공작원 2명이 구속됐습니다.
대남 공작업무를 담당하는
정찰총국 소속으로 이들은
탈북자로 위장해 황씨에게
접근하려 했던 것으로
밝혀졌습니다. 이주찬기잡니다.

리포터

서울중앙지검과 국정원은 전 북한 노동당 비서인 황장엽씨를 살해하라는 지령을 받고 북한에서 남파된 간첩 김모씨와 동모씨 등 2명을 구속했습니다.

김씨 등은 지난해 11월 중국 옌지를 거쳐 탈북자로 가장해 태국으로 밀입국했다가 강제추방 형식으로 한국에 들어왔습니다.

태국 불법 입국자 보호소에서 한국으로 보내줄 것을 요청한 겁니다.

하지만 위장 탈북을 의심한 국정원 조사과정에서 공작원 교육을 받고 황씨를 살해하라는 지령을 받았다는 사실을 자백했다고 검찰은 밝혔습니다.

이들은 대남과 해외 공작업무를 담당하는 인민무력부 정찰총국 소속으로 김영철 정찰총국장으로부터 직접 암살 지령을 받았다고 진술한 것으로 전해졌습니다.

이들은 검찰 조사에서 "황 씨의 동선을 파악한 뒤 구체적인 살해 계획을 지시받기로 돼 있었다"고 진술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검찰은 최근 정찰총국의 대남.해외 공작업무 주관인 '35호실'과 작전부 등이 지난해 확대 개편한 사실에 주목하고, 천안함 침몰 연관성도 함께 조사 중입니다.

검찰은 이들과 접선하려던 국내 고정간첩망이 있을 것으로 보고, 국정원과 공조해 수사를 확대하고 있습니다.

 

 

北 '황장엽 제거' 지시, 왜 작년 11월인가?

 
북한의 황장엽 전 노동당비서 암살 기도에서 가장 궁금한 부분은 `왜 지금인가'이다.

검찰 발표에 따르면 `황장엽 살해'를 목적으로 국내에 잠입한 남파간첩들은 작년 11월 북한 인민무력부 정찰총국의 김영철 총국장(상장)한테 직접 `암살 지시'를 받았다. 현 시점부터 따지면 5개월 전부터 암살 음모가 실행되고 있었던 셈이다.

북한이 만 13년 전에 남측으로 망명한 황 전 비서를 왜 이제 와서 제거하려 했을까, 지시가 떨어진 작년 11월에는 어떤 시의성이 있는 것일까 등의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게다가 1997년 2월 남한에 망명한 황 전 비서는 1923년생으로 올해 87세의 고령이다.
그동안 북한은 황 전 비서의 발언이 남한 언론에 보도되는 등 어떤 계기가 생길 때마다, 선전 매체를 통해 그를 비난하곤 했다. 하지만 이런 사례가 잦았다고 보기는 어렵고 더욱이 `신체적 위해'를 염두에 둔 듯한 노골적 위협은 거의 없었다.
 
예컨대 황 전 비서가 2003년 10월 처음 미국에 가 이런 저런 북한체제 비판을 쏟아냈을 때 북측은 조선중앙통신을 통해 "남조선 당국이 황씨 같은 인간폐물이 우리 체제를 헐뜯게 용인할 경우 수수방관하지 않을 것"이라고 경고했지만, 직접 황씨를 겨냥했다기보다 남한 당국에 대한 메시지로 받아들여졌다.
그런 맥락에서 북한의 온라인매체 `우리민족끼리'가 지난 4일 황 전 비서의 미국 방문중 발언을 문제삼아 "결코 무사하지 못할 것"이라며 격하게 비난한 것은 그 자체로 시선을 끌기에 충분했다. 해석하기에 따라 테러나 살해 기도로 볼 여지가 충분했기 때문이다.

황 전 비서는 3월30일 4박5일 일정으로 미국을 방문,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 초청 강연에서 "중국이 동맹관계를 끊으면 북한에는 사망선고와 같다", "북한의 현 상황에서 누구도 행복하지 않다" 등 현 강도높은 북한 비판 발언을 쏟아냈다.

특히 김정일 위원장의 후계자인 3남 김정은을 `놈'으로 부르며 "그깟 놈 알아서 뭐하냐"는 식의 독설을 퍼붓기도 했다.

이어 일본을 방문해 아사히 신문과 가진 인터뷰에서도 황 전 비서는 "부친인 김일성 주석 시대보다 (김정일) 독재의 정도가 10배는 강하다"면서 김 위원장을 향해 직격탄을 날렸다.

이런 흐름에서 보면, 시점이 서로 뒤엉킨 의미는 없지 않지만 이달 초 `우리민족끼리'가 황 전 비서에게 `무사하지 못할 것'이라고 위협한 언사가 결국 `엄포'만은 아니었던 셈이다.

`왜 작년 11월인가'라는 암살지시의 시점을 놓고는 아무래도 김정은 후계구도 구축에 방해되는 요소를 제거하려 했을 것이라는 분석이 유력하다. 평소에는 `역풍'을 생각해라도 내버려둘 수 있지만 후계구도에 나쁜 영향을 주면 결코 방관할 수 없다는 얘기다.

황 전 비서의 지난해 활동 내용을 되짚어 보면 특히 하반기 들어 강연 등 외부활동과 언론 노출이 잦아졌음을 느낄 수 있다.

작년 4월에는 자신의 저서 `인간중심철학원론' 출판기념회를 가졌고 6월에는 KAL858기 폭파범인 전 북한공작원 김현희씨를 만났으며, 9월에 다시 `민주주의와 공산주의'라는 책을 내 "북중 동맹관계를 끊도록 중국을 상대하는 외교를 통해 북한 문제를 해결하는 길 밖에 없다"는 주장을 폈다.

이어 10월에는 북한민주화위원회 개소식에 참석, 북한 개정헌법의 `공산주의' 삭제에 대해 "공산주의를 내세우면 왕정복고식 (3대)후계세습에 걸림돌이 되기 때문에 선군정치를 앞세워 공산주의를 배격하는 것"이라고 비판했고, 12월에는 북한민주화네트워크 창립 10주년 행사에서 "중국 동북지방의 조선족 교포 80만명을 잘 포섭해 북한에 들여보내면 북한 민주화에 큰 역할을 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처럼 작년부터 황 전 비서의 북한체제 비판 수위가 조금씩 높아지고 외부 활동도 활발해지자 `3대 세습' 후계구도의 정당화 논리에 문제가 생기지 않을까 우려해 `암살 카드'를 거내들었을 수 있다는 것이다.

또 30여개 남한 내 탈북자단체들이 협의체 구성을 추진하는 가운데 황 전 비서가 이들의 `구심점' 역할을 하는 듯하자, 탈북자 전체에 대한 `경고성 암살'을 기도했을 가능성도 제기된다.

특히 탈북자들이 운영하는 대북 매체들이 북한 내 통신원까지 운영하면서 화폐개혁 이후 북한의 감추고 싶은 `치부'를 이것 저것 들춰내자 그런 `경고'의 필요성을 더 크게 느꼈을 가능성도 없지 않다.

 

 

 

황장엽 암살기도…영화 '의형제'가 예언?

'이한영 살해사건'도 재조명 분위기

 

지난 20일 북한 전 노동당 비서 황장엽(87)씨를 살해하라는 지령을 받고 남파된 간첩 2명이 구속돼 충격을 주고 있는 가운데 올해 초 개봉돼 500만 관객을 동원, 제임스 캐머론 감독의 '아바타'와 함께 상반기 극장흥행을 주도했던 영화 '의형제'가 다시금 주목을 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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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의형제'에서 '그림자' 역을 맡아 열연한 배우 전국환. ⓒ 뉴데일리
영화 '의형제'는 해직당한 전 국정원 요원과 남파 공작원이 갖은 우여곡절 끝에 서로를 이해하고 화해한다는 내용을 그린 작품으로, 극중 초반과 후반부에 걸쳐 북한 체제를 비난한 책을 쓴 탈북자와 남파간첩 신분에서 변절한 대학교수를 잔혹한 킬러 '그림자'가 살해하려는 장면이 나온다.

사실 이 장면들은 지난 1997년 자신의 집 앞에서 괴한의 총격을 받고 살해된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전처 성혜림의 조카 이한영 씨의 실화를 바탕으로 재구성된 것이다.

실제로 이한영씨는 지난 1982년 10월 한국에 망명한 뒤 '대동강 로열패밀리'란 책을 발간하는 등 공공연히 북한의 실상을 알리고 체제를 비판하는 활동을 벌여 주목을 받아왔다.

그러던 중 1997년 2월 15일 오후 9시경 경기 성남시 자신의 아파트 엘리베이터 앞에서 북한 측 요원으로 추정되는 2인조 암살단에게 피격당해 사망했다. 당시 대낮에 자신의 아파트에서 피살당했음에도 불구하고  탄피와 총알 외에는 증거가 발견되지 않아 이 사건은 현재까지 '미제사건'으로 남아있다.

주목할 만한 점은 북한으로부터 살인지령을 받고 남파된 간첩이 항상 2인 1조였다는 점이다. 이한영 사건도 괴한 2명에 의해 저질러진 소행으로 밝혀졌으며 이번에 북한 정찰총국의 지령을 받고 위장 탈북해 붙잡힌 간첩도 김모(36)씨와 동모(36)씨 등 두 명이다. 의형제에서도 변절한 탈북인사를 제거하기 위해 '그림자'와 '송지원' 두 명이 한조를 이뤄 작전을 벌이는 내용이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