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조가 노인에게 호랑이 산봉우리의 기운을 누를 수 있는 방도를 가르쳐 달라고 애원했다. 노인은 “호랑이는 본디 꼬리를 밟히면 꼼짝 못하는 짐승이니 저 호랑이 산봉우리의 꼬리 부분에 절을 지으면 만사가 순조로울 것입니다”라는 말을 남기고는 훌쩍 떠났다. 이튿날 태조는 바로 호암산 꼬리 부분에 절을 지었고 ‘호압사’라 이름 붙였다. 이렇게 궁궐(경복궁)을 위협하는 호랑이 기운을 누르기 위해 창건되었다는 호압사는 18세기 전국 사찰의 소재·현황·유래 등을 기록한 [가람고]나 [범우고]에서도 호랑이 기운을 누르는 ‘비보’(裨補)로 소개되고 있다.
호압사 창건과 관련된 또 다른 전설도 있다. [신증동국여지승람] 금천조에 당시 시흥군 현감을 지냈다고 하는 윤자의 이야기가 전해진다. 윤자는 “금천의 동쪽에 있는 우뚝한 산의 형세가 범이 걸어가는 모습을 닮은 와중에 험하고 위태로운 바위가 있어 이를 ‘범바위’라고 부른다. 술사가 이를 보고 바위 북쪽에다 절을 세워 ‘호갑’(虎岬)이라고 하였다”고 말했다. 이처럼 호압사는 불교수행의 도량(道揚)이자 풍수적으로는 호랑이의 기운을 누르는 의미를 갖고 있다.
들꽃 가득 독산자락길과 몸이 즐거운 서울둘레길
독산자락길은 산벚나무와 노루오줌 등 다양한 수목과 야생초화가 자라는 만수천공원에서 출발해 진달래 동산, 독산자연공원, 정심초등학교로 이어진다. 금천구민문화체육센터까지 내리막길을 걷다 보면 1만 5,000㎡ 면적의 생태연못 3곳에 각양각색의 물고기들이 노니는 감로천 생태공원에 닿게 된다.
야트막한 능선엔 금천 관내와 안양천, 광명까지 한눈에 담을 수 있는 금천전망대가 있다. 그 옆에 놓인 ‘산울림다리’를 건너 금천체육공원 방향의 등산로를 걷다 보면 40여 종 5만여 본의 노랑꽃창포, 꽃무릇, 구절초 등이 심어져 있어 각양각색의 들꽃을 즐길 수 있다. 이곳 ‘들꽃향기원’은 숲속동화마을을 비롯해 각종 체험프로그램으로 각광받는 장소다. 마지막으로 능선을 지나 폭포와 팔각정자, 다목적광장, 각종 체육시설 등이 자리 잡은 산기슭공원에 도착하면 독산자락길 탐방을 마치게 된다.
서울둘레길은 호압사를 출발해 안양시 경계에 이르는 약 3㎞짜리 코스다. 이곳엔 옹달샘·남서울약수터, 잣나무산림욕장, 야호배드민턴장 등이 마련돼 있어 사계절 많은 시민들이 찾아와 휴식을 취하며 건강도 챙긴다.
한우물, 마르지 않는 우물
해발 315m 호암산 정상엔 사계절 마르지 않는 신비로운 우물이 있다. ‘한우물’로 불리는 네모지고 널찍한 우물은 통일신라 때 가로 17.8m·세로 13.6m·깊이 2.5m로 만들어졌다가 조선시대 위치가 조금 옮겨져 가로 22m·세로 12m·깊이 1.2m로 다시 축조됐다. 임진왜란 당시 한우물은 군용수로 사용됐고 [동국여지승람]엔 가뭄이 일어나면 이곳에서 기우제를 지냈다는 기록도 남아 있다.
제2 우물터도 발견된 바 있다. 한우물에서 동남쪽으로 300m 떨어진 곳에 가로 18.5m·세로 10m·깊이 2m의 우물터가 1990년 발굴됐지만 아직 복원되진 못했다. 발굴하면서 많은 유물이 나왔는데 그 중 ‘잉벌내력지내미(仍伐內力只內未)…’라고 적힌 청동숟가락이 나와 연대 결정에 중요한 역할을 했다.
한우물 동쪽 능선에는 호암산성이 자리 잡고 있다. 통일신라 문무왕 12년경 신라가 당나라와 전쟁을 벌일 때 한강을 넘어 수원으로 넘어가는 육로와 남양만으로 침입하는 해로를 효과적으로 차단·방어하기 위해 세워진 것으로 추정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