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한 취미생활 여행

홍대앞 서교

행복을 만드는 사람들 2011. 10. 18. 11:45

지하철역에서 나와 홍대 정문을 향한다. 좁은 오르막길은 사람과 차들로 가득하다. 어느 정도 올라가니 오른쪽으로 공간이 트이며 3층짜리 건물이 덩그러니 서있다. 폭이 5m밖에 되지 않는 건물은 양쪽으로 길이 있어  더 왜소해 보인다. 1층에는 금은방, 2층은 네일샵, 3층은 용도를 알 수 없는 옥탑방이다. 평소에 쉽게 접하는 형태의 동네 가게건물이다. 건물을 끼고 오른쪽으로 돌아본다. 분명 방금 전에 본 건물인데 여기서 바라본 분위기는 심상치가 않다. 2,3층의 낡은 건물 벽면에는 커다란 그라피티 벽화가 그려져 있고, 불규칙하게 난 작은 창들이 악보의 음표처럼 그 위를 떠다닌다. 건물 외부로 철제계단이 나 있고 천막 지붕이 건물 옥상을 덮고 있다. 아래로는 두 세 걸음 떼고 나면 하나씩 바뀌는 작은 가게들이 200여 미터에 걸쳐 뻗어 있다. 눈앞에 펼쳐진 진기한 풍경 바로 이곳이  ‘홍대 앞 서교365’이다.

홍대 앞 서교365 지도 보기

위에서 바라본 서교365의 전경.

 

 

기차를 닮은 건축

‘서교365’는 서교동 365-2번지에서 26번지까지, 모두 23개의 필지에 들어선 가늘고 긴 건물군을 말한다. 건물의 폭은 2m에서, 두꺼워도 5m 정도. 여러 건물로 되어 있지만 서로 붙어 있는 까닭에 그 긴 길이에도 불구하고 중간에 통과할 수 있는 길은 두 곳 밖에 없다. 한편 이들 건물군은 나란한 두 길 사이에 놓여 있는데, 사람들이 보통 ‘주차장길’이라 부르는 넓은 길과, 재래시장이 한창이던 시절 ‘서교시장길’이라 불리던 좁은 길이 그것이다. 지금도 서교시장은 인접한 큰 건물 지하에 자리하고 있다.

 

  • 1 낡은 입면에 다양한 요소들이 켜켜이 쌓였다. 다양한 가게들이 터를 잡은 서교365의 풍경.
  • 2 홍대 앞 길에서 본 서교365 앞쪽 입면.

 

 

그렇다면 이토록 특이한 모양을 지닌 서교365는 어떻게 만들어진 것일까? 1924년 일제강점기, 당인리 화력발전소가 지어지면서 연료인 석탄을 실어나르는 선로가 놓인다. 선로는 지금의 큰길 ‘주차장길’을 따라 용산에서 당인리 발전소로 향하였는데, 70년대에 들어 그 옆 좁은 땅에 하나둘 건물들이 들어서기 시작한다. 1976년 화력발전소 연료가 석탄에서 가스로 대체되면서, 더 이상 용도가 없어진 선로는 폐선이 되고, 철둑을 따라 길게 늘어선 건물들은 마치 운행을 멈춘 화물열차처럼 그 옆자리에 남겨지게 된다.

 

넓은 주차장길(위)과 좁은 시장길(아래) 사이에 있는 서교 365의 평면. 그 안의 작은 가게들까지 표시하였다.

 

 

누적된 시간의 형상

복잡하고 기다란 서교365 곳곳에는 지나간 시간의 흔적을 말해주는 흥미로운 형상들이 많다. 그 중 하나는 시장길 쪽에서 보이는 건물들의 입면이다. 처음 건물이 들어섰을 때, 모든 건물은 시장을 정면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기차가 지나는 뒤쪽으로 잘 지을 필요가 없었으니, 당연히 앞쪽에 정성을 쏟았다. 규칙적으로 창을 내고, 타일을 붙이고, 노출콘크리트 난간을 수평으로 두었다. 간단히 말하면 정면답게 ‘단정한 입면’을 만든 셈이다. 반대로 선로 쪽 뒷면에는 필요에 따라 작은 창들을 내고, 간단한 페인트칠 정도로 끝을 냈다. 2000년 이후 주차장길로 많은 사람들이 다니면서 ‘과거의 뒤쪽 소박한 벽면’ 아래로 투명하고 화려한 가게들이 들어서면서 묘한 대조적 풍경이 형성된 것이다.

 

2006년에 그린 시장길 쪽 입면. 70년대 스타일의 단정한 입면과 터줏대감 격인 철물점,슈퍼,식당 등의 가게들이 보인다.

 

 

다른 하나는 주차장길에서 보이는 ‘떠 있는 V자 계단’이다. 사람이 많이 다니는 곳에 뜬금없이 돌출된 계단참. 그리고 거기에서 양쪽으로 뻗어 3층 옥탑으로 오르는 V자 모양의 철제계단은 ‘저건 뭐지?’ 하는 호기심을 자극하기에 충분하다. 어떻게 진입할 수 있을까 찾다 보면, 한참을 돌아 ‘시장길’에 가서야 2층으로 올라가는 계단을 발견할 수 있다. 기차가 다니던 시절 먼저 2층을 짓고 나중에 3층을 올려 연결하려고 보니, 안으로는 계단을 만들 곳이 없어 당시의 뒤쪽 바깥에 외부계단을 붙였을 것이다. 거기에 건물의 폭이 좁아, ‘옥탑방 하나에 계단 하나씩’ 양쪽으로 두 개를 붙여 연결하게 된 것이 지금의 ‘V자’ 모양이 된 것으로 추측된다. 사람들의 눈길을 끄는 특이한 형상 뒤에는 이렇게 도시의 여러 사정이 숨어있는 셈이다. 들리는 소문에는 계단참에 밧줄 하나가 늘어져 있었는데, 올라가는 길을 찾지 못한 사람이 이 밧줄을 타고 올라왔다는 웃지 못할 이야기도 전해 온다.

 

  • 1 실측조사하여 만든 서교365 모형사진.
  • 2 긴 입면사진과 모형으로 만든 V자 계단.

 

 

한 켜의 공간, 그 내부의 풍경들

2006년에 학생들과 함께 조사를 하였다. 건물의 안과 밖을 재어 도면을 그리고 나중에는 모형도 만들어 보았다. 건물은 제각기 다른 모양을 하고 있지만, 하나로 모여 길게 집합을 이룬 전체의 모습은 매우 조화롭고 아름다워 보였다. 특히 주차장길 쪽으로 과거에 소박하게 지은 ‘무덤덤한 벽면과 작은 창들’에는 어느 건축가도 만들기 어려운 자연스러움이 있었다. 오히려 나중에 들어와 수리를 하면서 작고 아기자기한 가게들을 합쳐 하나로 만든 것들이 어색해 보였다.

 

  • 1 서교365 다양한 내부풍경들.
  • 2 입체로 표현한 내부 공간구성도.

 

 

실측과 더불어 서교365에 있는 여러 가게들(작업실, 식당, 옷가게)에서 일하는 분들과 인터뷰를 하고, 또 어떻게 내부공간을 이용하고 있는지 관찰했다. 1층이나 2층에 가게를 두고 3층에는 잠깐씩 쉬거나 식사 등을 할 수 있는 주거 겸 창고를 두기도 했고, 작은 작업실을 효율적으로 쓰기 위해 이동이 가능한 개인용 작업공간을 만든 작업실도 있었다. 3층을 모두 식당으로 써서 좁고 가파른 계단을 오를 때마다 방이 하나씩 나오는 곳도 있었다. 앞뒤로 길이 나 있고 폭이 5m도 되지 않는 제한된 ‘한 켜의 공간’에서, 나름의 방식으로 지혜를 내어 살아가는 다양한 삶의 형상을 볼 수 있었다.

 

 

사라진 작업실과 1층만 남은 구성집

최근 서교365를 다시 찾았다. 'no name no shop'의 커다란 작업실 유리창이 보인다. 차분하면서도 참신한 디자인 감각이 느껴졌던 종이 박스로 가득했던 유리창은 이제 레스토랑이 되어 볼 수가 없다. 3층을 복잡한 계단으로 입체적으로 쓰던 오래된 식당 ‘구성집’도 2, 3층을 작은 가게들에 내어주고 1층만 남았다. 갈 때마다 변하는 서교365의 모습은 낡고 허름하지만 인간적이고 아늑한 공간이 하나둘 사라지고, 점점 화려하고 트렌디한 상업공간으로 변해간다는 걱정이 든다.

 

도시의 역사와 다양한 사람들의 삶이 만나 진귀한 풍경을 만든 서교365. 처음에는 철둑에 절박하게 자리 잡은 가게와 주거들로 시작해, 다음에는 허름하지만 창작이 꽃피는 작업실 또는 끼리끼리 모여 그들만의 친밀함을 나누는 아지트로 변모했고, 이제는 작고 유별난 가게들이 모이는 상가로 변하고 있다. 찾는 사람이 많아진 데다, 자본의 유입으로 인해 변해가는 것은 어쩔 수 없을지 모르겠다. 하지만 잊지 말아야 할 것이 하나 있다. 서교365의 가장 큰 매력은 이제까지 쌓아온 날고 허름하지만 구수한 맛이 나는 그 시간의 누적에 있다는 사실이다.

 

서교365 옥탑방에서 열렸던 '나는 이 건물이 아름답다 展'전시모습.카페 서교365가 주최하였다.

 

 

 

조정구
글·사진 조정구 / 건축가
2000년 구가도시건축(http://guga.co.kr/)을 만들어 ‘우리 삶과 가까운 일상의 건축’에 주제를 두고, 도시답사와 설계 작업을 하고 있다. 서울진풍경은 10년간 지속해온 답사를 글과 그림으로 정리한 것이다. 대표작으로 가회동 ‘선음재’, 경주 한옥호텔 ‘라궁’ 등이 있다. 라궁으로 2007년 대한민국 목조건축대전 대상을, 2008년에는 안동군자마을회관으로 한국건축가협회 아천상을 수상했다.

실측조사 및 도면 구본환, 이다미, 정희태, 유진희, 김다연, 박소언, 김인경
그래픽 조지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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