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선동은 혜화문 밖에 있던 ‘삼선평’이라는 평평한 들판에서 유래한다. 이름은 평야지만 삼선동만큼 좁고 넓은 계단과 삐뚤삐뚤한 골목이 많은 동네도 드물다. 그야말로 몸으로 느끼고 기억되는 동네가 바로 삼선동이다. 평지가 없어서가 아니다. 주름이 진 것처럼 지형의 기복이 심하기 때문이다. 높은 성곽에서 깊은 골짜기, 다시 언덕, 골짜기, 언덕의 순으로 지형이 펼쳐지기 때문에 가로질러 가려면 오르고 내리는 일이 쉽지 않다. 하지만 어떤 이들에게는 이렇게 많은 언덕과 골짜기를 다니는 것이 그 안에 있는 다양한 골목과 계단을 만나는 기쁨이 되기도 한다. | |
삼선동 장수마을 지도 보기
성곽과 삼선공원 사이에 펼쳐진 장수마을의 전경.
삼선동 깊은 골짜기에 자리한 공원
삼선동에서도 가장 깊은 곳은 서울 성곽과 한성대학교 사이의 골짜기라 할 수 있다. 지도를 보면 마치 배 모양을 한 공원이 나타나는데, 이곳이 바로 삼선공원이다. 동쪽에는 한성대가 맞붙어있고 서쪽에는 ‘장수마을’이 성곽 아래 자리한다. 남쪽에도 높은 지대가 있어 u자형의 주머니처럼 생긴 지형을 이룬다. 형국이 이러하다 보니 외부에서 들어오는 길은 성북천으로 이어지던 옛 하천길을 따라 거꾸로 거슬러 오르는 방법뿐이다. 골짜기 아래로 물이 모여들던 기다란 땅을 덮어 만들었기 때문에 지금처럼 배 모양의 특이한 형상이 되었을 것이라 추측된다. 기다란 공원 안에는 입구에서부터 관리소, 어린이 놀이터, 문화재, 산책로 그리고 어린이집이 300미터 정도 되는 공간에 마치 콩깍지 안에 한 알씩 들어간 완두콩처럼 연달아 자리한다. | |
삼군부 총무당 그리고 조선보병대의 안타까운 역사
공원의 형상만큼이나 눈에 띄는 것은 한가운데 위치하고 있는 커다란 한옥이다. 그냥 집으로 보기엔 규모가 크고 격식도 남다르다. 마치 제자리가 아닌 곳에 위치한 느낌이다. 아니나 다를까 이 건물은 ‘삼군부 총무당’(서울 유형문화재 제37호)이라 불리는 몇 남지 않은 조선시대 관아건물이다. 원래 자리는 광화문 바로 앞, 지금의 정부중앙청사 자리로 조선말 최고 군사기관으로 대궐의 수비, 도성의 순찰 등을 총괄하던 삼군부청사의 중심건물이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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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광화문 육조거리에 있던 삼군부 총무당의 원래 모습.
- 2 입구에 있는 어린이 놀이터 전경.
- 3 공원 한가운데 있는 삼군부 총무당 전경. 일제강점기에 이곳으로 이전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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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군부 총무당은 일제강점기에도 오랫동안 원래의 자리를 지킬 수 있었다. 그 이유는 ‘조선보병대’라는 황궁의 의장과 수위를 담당하는 부대가 그곳에 남아 있었기 때문이다. 나라의 군대가 해산되고도 왕을 보위한다는 명목으로 남은 ‘황실 근위대’는 고종, 순종이 승하하면서 점차 위축되어 결국 1931년 4월 해단의 운명을 맞았다. 언제 사라질지 모르던 ‘나라 없는 군대’의 운명은 결국 옛 삼군부 앞마당에서 그 마지막을 맞이했다. 그 후, 삼군부에 있던 총무당, 청헌당, 덕의당 3채의 건물 중 덕의당은 사라지고, 청헌당은 지금의 공릉동 육군사관학교 안으로, 총무당은 이곳 삼선공원에 옮겨졌다. 왜 일제가 잘 보이지 않는 성곽 뒤쪽 골짜기에 총무당을 가져다 놓았는지 그 이유는 정확히 알 수 없다. | |
성곽 밖 암문 쪽에서 바라본 장수마을의 풍경.
성곽아래 펼쳐진 골목과 집들
2006년 겨울 낙산공원을 답사하다 우연히 성곽 밖에 있는 동네 하나를 발견했다. 안에서 보았을 때는 사람 키보다 낮은 성곽이지만 성벽 아래 난 암문을 지나니 그 높이가 4~5m는 되어 보였다. 리어카를 끌고 겨우 지날 만큼 좁은 길이 성곽을 따라 이어지고 그 아래로 집들이 모여있다. 단이 지며 내려앉은 집들 사이로 골목들이 흘러 어디론가 사라진다. 지붕 위로는 하늘 대신 멀리 시가지가 펼쳐진다. 낡고 허름한 집들이지만 성곽과 같이 있는 동네의 풍경은 친숙하고 따스했다. | |
2006년 장수마을 골목과 집들의 관계를 나타낸 [골목형성도] 아래 배처럼 기다랗게 생긴 공원이 삼선공원이다.
성곽과 삼선공원 사이의 경사지에 자리한 장수마을은 전후에 서울로 모여든 가난한 사람들이 움막이나 판잣집을 지으면서 형성되었다. 급한 경사에 저마다 다른 지형조건 속에서 길을 내고 축대를 세워 터를 만들고 집을 지었다. 처음에는 허술했던 집들이 60~70년대를 거치며 양성화되어 지금과 같은 모습이 되었다고 한다. 그렇다면 골목과 집들은 어떤 식으로 자리를 잡았을까? 지도를 그리고, 하나의 골목에서 들어갈 수 있는 집들을 동일한 색으로 표시해 보았다. 그 결과 골목과 집들은 작은 포도송이처럼 여러 덩어리로 뭉쳐졌다. 골짜기에 파고들어 골목을 둘러싸고 자리한 집들이 있는가 하면 성곽을 향해 경사를 오르며 길 양쪽으로 자리한 집들도 있다. 그리고 어떤 경우엔 위쪽까지 올라왔다 다시 내려가면서 막다른 골목에 네댓 집이 모여 있는 경우도 볼 수 있었다. 한눈에 파악하기 어려운 복잡한 골목이지만, [골목형성도]를 통해 지형에 따라 골목과 집들이 어떻게 형성되었는지를 조금 더 쉽게 알 수 있었다. 흥미로운 것은 진입하는 골목이 다르면 수십 년을 한동네에 살아도 바로 옆에 누가 살고 있는지 모르기도 한다는 사실이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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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성곽을 향해 오르는 어느 골목의 모습. 사람들이 모이는 곳에 자연스레 평상이 자리한다.
- 2 화초가 무성한 지붕 너머로 재미있게 생긴 네모난 집들이 보이고, 뒤로는 성곽이 보인다.
- 3 마을 한가운데 있는 뾰족바위, 10여 년 전까지 마을에서 제사를 올리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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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수마을, 골목과 주거의 형상을 기록하다
체부동 골목에 이어 삼선동 장수마을의 골목도 그려보았다. 골목길에 있는 평상, 의자, 화분, 빨래, 자전거 그리고 집에 들어가는 문과 하수구 뚜껑 등도 표시했다. 무엇보다 계단의 모양과 위치를 잘 기록하였는데, 경사진 장수마을 골목에서 가장 중요한 특징이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더불어 각기 다른 색깔의 지붕들도 그림으로 나타내었다. 마지막에는 그림자를 그려 넣어 지형의 기복과 각 집의 단차가 입체적으로 들어나도록 하였다. 끈기를 요하는 작업이지만 나머지 그림이 완성되면, 땅에서 보는 것과는 또 다른 관점에서 장수마을의 생활상을 느낄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사람들이 들고 다니면서 답사에 도움이 되는 ‘장수마을 골목지도’가 되었으면 좋겠다. | |
장수마을 골목지도를 만들기 위해 작업 중인 그림.
또 한편으로 마을에 있는 집을 실측했다. 현재 집들이 비어 있는 관계로 생활상을 볼 수는 없었지만 여러 가지로 흥미로운 점을 발견했다. 급한 경사지에 높은 축대를 쌓아 만든 대지는 그 폭이 크지 않고 둥글게 돌아가는 자연지형에 맞게 호를 그리며 휘어진 모양을 하고 있었다. 처음에는 화장실, 부엌, 방으로 된 단순한 ‘3칸집’을 지었다가, 옆으로 더 이어 지을 때는 대지 모양에 맞추어 한 번 꺾어 방과 부엌, 창고, 거실 등을 들여놓았다. 이렇게 되니 집은 ‘부메랑’같은 v자 모양을 하게 되고, 여기에 건물 앞으로 작은 부엌과 방 하나가 덧붙어 3세대가 사는 집이 되었다. 확장을 하여 세를 놓았던 것으로 추측된다. 집은 마을 위쪽 비교적 높은 곳에 자리하고 방향이 다른 두 곳을 동시에 바라볼 수 있어 시원한 전망을 갖고 있었다. 저마다 다르게 들어선 집들의 풍경에는 이렇게 주어진 조건들을 이겨내고 삶의 거처를 마련하려는 사람들의 ‘진솔한 의지’가 담겨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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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축대 위의 집 실픅 평면도. 대지형상에 맞추어 'V자'모양을 하고 있다.
- 2 집 안 쪽에서 바라본 창밖 풍경.
- 3 축대 위의 집 단면도. 좁은 폭의 대지에 높은 축대를 쌓고 자리 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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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민이 참여하는 대안찾기
장수마을의 또 다른 이름은 ‘삼선4구역’이다. 2004년 재개발 예정구역으로 지정되었지만 급한 경사지에 서울 성곽과 삼군부 총무당 등 문화재의 영향으로 재개발 사업추진은 미진하다. 문제는 구역지정이 되면서 마을을 위한 실질적인 주거환경 개선이 이루어지지 못한다는 점이다. 도시가스 등의 기반설비도 들어오지 않고, 주민들도 언제 시작할지 모르는 사업 때문에, 낡아가는 집을 고칠 수도 없다. 노인인구도 55%가 되어 여러 가지 사회적 서비스가 절실한 상태이다.
재개발이 된다고 하여도 주민들의 어려운 형편에 비용을 부담하고 다시 살게 될 가능성 즉, ‘재정착율’은 지극히 낮아 보인다. 어떻게 하면 이곳에 사는 주민들이 마을을 떠나지 않고 공동체를 이루며 더 나은 주거환경에서 살아갈 수 있을까? 마을의 고유한 문화와 경관을 지키고, 서울성곽과 삼선공원 같은 주변 자산을 어떻게 잘 활용할 것인가? 이러한 문제의식을 바탕으로 다양한 단체와 전문가들이 모여 ‘주민참여형 대안개발’을 모색하고 있다. 필자 역시 이 모임에서 작은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재개발이 모든 것의 우위를 점하는 지금의 현실에서 오히려 주목 받지 못한 성곽 뒤편 마을에 새로운 희망의 불씨가 싹트기를 기대해본다. | |
삼선공원 옆 삼선동 일대엔 장수마을만큼이나 훌륭한 명품골목들이 많다.
- 글·사진 조정구 / 건축가
- 2000년 구가도시건축(http://guga.co.kr/)을 만들어 ‘우리 삶과 가까운 일상의 건축’에 주제를 두고, 도시답사와 설계 작업을 하고 있다. 서울진풍경은 10년간 지속해온 답사를 글과 그림으로 정리한 것이다. 대표작으로 가회동 ‘선음재’, 경주 한옥호텔 ‘라궁’ 등이 있다. 라궁으로 2007년 대한민국 목조건축대전 대상을, 2008년에는 안동군자마을회관으로 한국건축가협회 아천상을 수상했다.
실측조사 및 도면 요네다 사치코, 이창규, 최지희, 강동균, 김보라
그래픽 조지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