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한 취미생활 여행

북촌 한옥길

행복을 만드는 사람들 2011. 10. 18. 11:52

북촌에 갔다. 처서 지나서였다. 한여름 폭우도 한풀 꺾이고 선선한 가을 바람이 막 불기 시작할 무렵, 길바닥을 요란하게 두들기던 소나기가 그친 뒤였다. 지하철 3호선 안국역 3번 출구로 나오자 바늘 같은 햇살이 내려 꽂히고 있었다. 현대 계동사옥에서 중앙고교로 이어지는 길에 북촌문화센터가 보였다. 문화센터에서 곧게 뻗은 길이 동길. 슈퍼마켓과 미용실, 목욕탕, 분식집, 문방구, 작은 공방 등이 몰려 있어 아기자기한 동네 분위기를 물씬 풍긴다. 길 끝에 중앙고등학교가 있어서인지 교복을 입은 학생들도 눈에 띈다. 계동길은 서울 한옥체험관, 북촌 한옥체험관 등이 몰려 있어 외국인들이 많이 찾는 곳. 그날도 손에 지도를 쥐고 배낭을 멘 금발의 외국인들이 여럿 눈에 띄었다. 이 길을 쭉 따라 중앙고등학교까지 간 후 좌회전 하면 가회동 11번지다. 가회박물관, 동림매듭박물관, 한상수자수박물관 등이 모여 있다. 북촌골목길 여정의 첫 번째 도착지다.

  • 1 북촌문화센터. 서예,공예 등 전통 강좌를 들을 수 있다.북촌 주민들의 사랑방 역할도 하는 곳이다.
  • 2 운치 가득한 가회동 한옥길. 몇 번 되풀이해 걸어도 지겹지 않은 길이다.
  • 3 한옥마을에서 만난 단아한 풍경. 한옥마을을 걷다 보면 마음이 절로 단정해지는 것 같다.
  • 4 계동길은 외국인들도 많이 찾는다. 그래서인지 우리나라에선 보기 드문 게스트하우스도 있다.

 

 

 

1930년대 전후에 들어선 도시형 한옥

북촌에 발걸음을 들이기 전, 잠시 북촌에 대해 알고 가자. 요약하자면 대략 이러하다. 북촌은 창덕궁과 경복궁 사이에 자리한다. 삼청동, 가회동, 원서동, 계동, 안국동, 송현동, 사간동 등을 포함한 지역을 일컫는다. 청계천을 경계로 북쪽에 있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청계천 남쪽에 자리했던 남촌이 하급관리들과 가난한 선비인 딸깍발이들의 주거지였다면 북촌은 상류층 양반들의 주거지였다. 북촌은 예로부터 볕이 잘 들었고 지하수가 풍부했다고 한다. 배수도 잘 됐다. 게다가 도성의 중심에 있어 왕실의 종친과 힘깨나 쓴다는 세도가, 벼슬아치, 팔도 각지에서 올라온 양반들이 모여 살았다. 그들의 대저택과 그들이 부리던 하인이 기거하는 크고 작은 집들이 세워졌다. 하지만 조선조가 막을 내리면서 북촌의 영화도 시들었다. 왕조가 무너지면서 세도가들은 몰락하기 시작했고 그들의 경제적 기반이 약화되자 대규모 식솔을 유지하기도 힘들어졌다. 어쩔 수 없이 하인과 식객을 내보내야 했고 물건을 내다 팔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북촌 앞 우정국 주변에 골동품 매매 상점이 하나 둘 생겨났는데, 이것이 인사동의 기원이 되었다고 한다.

 

현재 북촌 일대에는 900여 채의 한옥이 있다. 한때 3,000여 채가 넘는 한옥이 있었다고 하지만 양옥과 다세대 주택들이 들어서면서 지금은 그 수가 크게 줄었다. 사실 가회동 인근을 걸으며 만나는 한옥 대부분은 1930년대를 전후해서 들어선 것들이다. 일제강점기 시절 고관대작들이 살던 북촌의 대저택들 대부분은 사라졌고 그 자리에 중·소규모의 한옥들이 들어섰다. 당시 주택건설업체였던 건양사에서 서민들이 살기 적합하도록 대지를 매입해 30~60평짜리 한옥을 지어 분양한 것들이다. 각각 5000여 평, 2700여 평에 이르던 가회동 31번지, 26번지도 이 시기에 소규모 필지로 분할되었다고 한다. 그렇지만 전통적인 한옥 양식을 잘 간직하고 있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평가다. 가옥 구조 역시 폐쇄적으로 바뀐 건 어쩔 수 없다. 가회동 한옥의 대부분은 벽체와 벽체를 잇대고 있다. 골목 쪽으로는 대문과 창만을 보여준다. 지붕 역시 ㄷ자 형태. 솟을대문과 중정(안채와 바깥채 사이의 뜰)이 사라진 자리에는 좁은 마당과 펌프 시설이 들어섰다이른바 집장사들이 한옥을 집단 건설하면서 생겨난 형태다.

 

 

절로 느려지는 발걸음

북촌 한옥의 내력이 어떠하든 간에 북촌은 참 기분 좋은 곳이고, 가치 있는 공간이고, 음미하듯 천천히 거닐어볼 만한 길이다. 특히 하늘 화창한 가을 어느 날, 당신이 가회동 11번지에 발을 들여놓았다면 당신의 발걸음은 느려질 것이다. 날렵한 선을 자랑하며 하늘로 치켜 올라간 처마의 선, 작은 마당에 꼭 있을 만큼만 심어져 있는 푸성귀, 담장 너머로 기웃이 고개를 내민 감나무, 붉은 꽃을 등처럼 달고 늘어진 새빨간 능소화, 빗방울을 머금고 있는 장미…… 이 모든 것이 당신의 마음을 느긋하고 여유롭게 만들 것이다. “처음에는 많이 망설였죠. 과연 한옥이라는 공간에 적응할 수 있을까 하구요. 큰 맘 먹고 한옥에 살기로 결정했는데 아무리 생각해도 잘한 것 같아요.” 정아무개씨(41)는 미국에 살다 3년 전 가회동으로 들어왔다. “빌딩 숲 속에 살던 때와는 마음가짐이 달라진 것 같아요. 한 번 주위를 돌아볼 수 있는 여유가 생긴 것도 같고……” 방울토마토가 심어진 화분에 물을 주며 그가 말했다. “오전 내내 비가 내렸죠. 처마에 듣는 빗소리, 경험하지 않은 사람은 그 느낌을 모를 거에요.

 

한옥체험관을 지나 계동길 끝자락에서 중앙고등학고를 끼고 왼쪽으로 두 번 꺾으면 작은 골목길이 나온다. 기와지붕이 어깨를 맞댄 한옥마을이 한눈에 바라보이는 곳이다. 디카족들의 인기 출사 포인트기도 하다. “뭐라고 말로 표현하기 힘드네요. 서울에 이런 정경이 있었다니” 일본 도쿄에서 왔다는 다카하시씨(53)는 한국 방문 일주일 째. “압구정도, 남산, 홍대, 인사동 등지를 돌아봤지만 북촌이 제일 멋있는 곳 같아요. 뭐라고 할까. 서울의 과거와 현재가 묘하게 공존하고 있다고 할까요? 아주 매력적인 곳입니다.” 가회동 11번지에서 가회동길을 따라 내려오면 길 건너 돈미약국이 보인다. 오른쪽으로 골목을 따라 들어가면 키 큰 회나무집을 만나는데 여기서부터 한옥 주택가가 시작된다. 북촌한옥길이다. 이 길을 따라 북촌한옥1, 북촌한옥2길 등이 이어진다. 그리고 여기에 북촌에서도 가장 아름다운 한옥마을로 손꼽히는 가회동 31번지가 있다. 길 양편으로 단아한 지붕의 한옥이 단정하게 늘어서 있고 가운데로 오르막길이 시원하게 뻗어있다. 가회동은 기쁘고 즐거운 모임이라는 뜻. 길 초입과 막바지에서는 한옥 지붕 사이로 펼쳐지는 서울 시내 풍경을 감상할 수 있다.

 

 

북촌, 우리 도시의 ‘오래된 미래’

북촌 한옥마을에 잡음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2001년 서울시가 추진한 북촌 가꾸기 정책이 시작된 이후 많은 한옥이 새로 들어섰다. 가회동에서 30여 년을 살아왔다는 최아무개씨(59)는 “서울시의 지원을 받아 새로 지어지는 한옥들 가운데 엉터리도 많다”고 말했다. “콘크리트로 벽을 쌓고 2층으로 만든 집도 있습니다.” 외지인들이 한옥을 사들이는 것도 문제가 되고 있다. 어느 골목의 경우 전체 10여 채 한옥 가운데 8~9채가 외지인에게 팔리기도 했다. 이 경우 팔린 집들 대부분에 사람이 살지 않는다는 것. 별장이나 투자 목적으로 한옥을 사기 때문이다. 가회동 31번지에서 슈퍼마켓을 운영하는 한 할머니는 “사람 살지 않는 집이 많다”며 “밤에는 불도 켜지지 않아 사람 사는 동네 같지 않다”고 말했다. 상권도 급속히 커지고 있다. 인사동의 갤러리, 전통공방, 카페들이 급속히 북촌 구석구석으로 들어서고 있다. 땅값도 크게 치솟은 건 두말 할 나위도 없다. 평당 2000만원을 넘어서는 곳도 있다. 주말이면 산책 나온 시민들로 북적거리는 골목 골목이 이를 말해준다. 가회동에서 35년을 살았다는 한 주민은 “예전에는 북촌만한 곳도 없다고 생각했지만 요즘은 그것도 아닌 것 같다”며 고개를 저었다. 공기 좋고 사람들도 친절하고…… 다 좋은 동네였죠. 하지만 요즘에는 집 담장의 높이 때문에 송사도 빚어진다고 하대요. 주차 문제 때문에도 밤낮 시끄럽구요.” 그는 이사를 심각하게 고민하고 있다고 했다.

 

북촌한옥길에서 만난 많은 사람들의 말처럼 지금 북촌은 하루가 다르게 변하고 있다. 그렇지만 여러 문제점을 떠나 북촌은 우리가 보존하고 기억해야 할 만한 가치임에는 분명하다. 북촌은 옳고 그르다는 가치판단을 하기 이전에 우리의 과거이면서도 우리들 현재의 삶이 생생히 살아 숨쉬고 있는 현재이기 때문이다. 오래된 미래가 될 것인지, 아니면 그냥 박제된 과거 또는 전시된 과거로 남을 것인지. 지금 북촌은 갈림길에 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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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갑수
대학에서 국문학을 전공했다. 1997년 계간 <문학동네>에 시 '밀물여인숙'을 발표하며 등단했으며, 시집 [단 한 번의 사랑]을 펴냈다. 일간지와 여행 잡지에서 여행 담당 기자로 오랫동안 일했다. 여행사진 에세이 [당분간은 나를 위해서만]과 [구름 그림자와 함께 시속 3km]를 펴냈다. 지금은 시를 쓰고 음악을 들으며 자유롭게 여행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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