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한 취미생활 여행

한남동 해맞이길

행복을 만드는 사람들 2011. 10. 18. 11:54

2009년 현재의 서울에서 골목길이라고 부를 수 있는 공간은 손에 꼽을 정도다. 재개발, 뉴타운 조성, 구획정리·정비 사업 등 갖가지 개발의 이름 아래 골목길은 사라졌다. 서민들의 삶을 실핏줄처럼 연결했던 골목길은 쭉 뻗은 대로로 재탄생했다. 이런 점에서 서울 한남동은 소중한 곳이다. 대한민국 상류사회를 상징하는 동네 가운데 하나인 한남동. 1960년대부터 시작된 경제개발계획 시기에 경제인들과 관료들이 모여들면서 이루어진 대표적인 부촌인 이곳에도 아직 삶의 곡절이 진하게 묻어 있는 골목길이 남아있다. 해맞이길이다. 한남동 언덕 정상의 마전터2길과 제청전길, 도깨비시장길 등 세 길이 만나는 ‘삼거리’에서 시작해 한남오거리 방면으로 언덕 능선을 따라 얽히고 설키며 내려온다. 격식 없고 소박하고 즐겁다. 때로는 우리네 인생사처럼 굴곡지며 흐른다. 행정구역상으로는 한남 1동이다.

 

 

 

  • 1 해맞이 3길. 일자 계단의 배열이 단정하다. 계단의 역할에만 충실하겠다는 의도가 강하다.
  • 2 저녁 무렵의 도깨비시장길. 황금빛 노을의 질감이 비단처럼 곱다.
  • 3 손으로 쓴 간판글씨가 마냥 정겹다. 주인의 심성이 넉넉하고 익살맞을 것만 같다.
  • 4 해맞이 2길 5번지와 8번 사이. 한 사람이 지나가기에도 아슬아슬한 좁은 길이다.

 

 

 

실핏줄처럼 얽힌 골목길

삼거리에 서면 동쪽으로 옥수동과 금호동이 바라보인다. 고개를 돌리면 한강과 강변북로, 남산타워와 힐튼 호텔, 순천향대병원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진다. 서쪽 방면으로 내려가면 보광동이다. 도깨비시장길에서 제청전길 방면으로 걸음을 옮기다보면 해맞이5, 해맞이3, 해맞이2길을 가리키는 표지판이 차례로 나타나는데 순천향대 방면으로 급경사를 타며 내려온다. 그리고 능선 중턱에서 남계천7, 남계천6길과 차례로 만나 골목길의 거대한 미로를 완성한다. 한남동 골목길의 주인공이 바로 이 해맞이길이다. 골목길은 제멋대로다. 쭉 뻗어내려 가다가 갑자기 직각으로 뒤틀리기도 하고 둥글게 뻗어나가기도 한다. 막다른 골목을 보여주기도 한다. Y자형, L자형, S자형 등 생김새도 다양하다. 이 골목들마다 어김없이 계단이 들어서 있다. 50, 60 계단이 가파르게 이어지기도 하고 4~5계단으로 간단하게 끝나기도 한다. 해맞이길을 걷다보면 골목길이 집들이 하나 둘씩 들어서면서 그때 그때 만들어졌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해맞이길의 하이라이트는 해맞이 2 5번지와 8번지 사이다. 울퉁불퉁한 석축과 시멘트벽 사이로 길이 10여 미터에 불과한 골목길이 나 있다. 평균 너비가 50~60㎝밖에 되지 않는다. 두 명이 함께 지나가기도 버겁다. 길이라고 부르기조차 민망할 정도다. 맞은편에서 사람이 온다면 한 사람이 다시 뒤돌아가야 한다. 이곳에서 36여 년째 살고 있다는 주민 이아무개씨(72)는 “70년대 재개발이 시작되면서 철거민들이 몰려들어 지금의 마을 모양이 만들어졌다”고 말했다. 해맞이길에는 햇볕이 귀하다. 마을은 동향인데 햇볕은 아침 무렵 잠깐 들다 사라진다. 해맞이길이라는 이름은 어쩌면 해를 간절히 바라는마음에서 붙은 이름인지도 모른다. 그래서일까. 주민들은 햇볕이 드는 이른 아침부터 서둘러 화분을 내어놓고 빨래를 걸곤 한다. 능선 아래쪽 남계천길은 해맞이길과는 골목길의 양상이 다르다. 해맞이길이 미로처럼 얽혀있지만 서로 통하는 반면 남계천길은 막힘이 많다. 남계천2길과 남계천3길은 아예 막다른 골목이고 남계천1, 2길도 일부만 열려 있다. 남개천5, 6, 7길이 희미하게 해맞이 길과 이어진다. 얼개도 해맞이길처럼 복잡하지 않다.

 

 

오래된 골목, 그곳에 스민 삶

해맞이길에 들어선 집들 중 70~80 퍼센트가 2~3층의 다세대 주택이다. 80년대 이후 개축한 집들이다. 붉은 벽돌과 회색빛 시멘트로 지은 주택들이 레고 블록처럼 빼곡하게 서 있다. 순천향대에서 올려다보는 한남동은 그로테스크한 느낌마저 자아낸다. “내가 한남초등학교 1회지. 아들도, 손자도 한남초등학교에 다녔어”하며 마을 슈퍼마켓 앞에서 만난 한 할아버지는 ‘그때 그 시절’을 잠시 추억한다. “그때만 해도 고작 세 가구가 살았는데, 재개발하면서 많이 몰려왔지. 그러니까 지금 한남동도 한 차례 재개발 된 거야.해맞이길을 거닐다보면 ‘서울에도 이런 곳이 아직 남아있었구나’하는 생각이 든다. 해질 무렵이면 담 너머로 구수한 된장찌개 끓는 냄새가 퍼지고 골목길에는 교회 종소리가 내려앉는다. 전봇대에는 잃어버린 강아지를 찾아달라는 전단지가 바람에 날리고, 시멘트 담벼락에는 ‘철수는 영희를 좋아한다’는 ‘정겨운’ 낙서가 씌어있다. 길과 길이 만나는 조그마한 공터에는 손바닥 만한 텃밭을 마련해 푸성귀를 심어놓기도 했다. 모퉁이를 돌아 뛰어가는 아이들의 뒷모습과 무거운 장바구니를 들고 가파른 계단을 힘겹게 오르는 아주머니의 모습에 가슴 한 켠이 찡해지는 곳이기도 하다.

 

재래시장도 있다. 도깨비시장이다. 대부분의 재래시장이 낮은 평지에 만들어진 것에 비해 언덕 정상부에 자리 잡고 있다는 점에서 희귀하다. 도깨비처럼 열렸다가 도깨비처럼 닫힌다고 해서 이름 지어졌다고도 하고, 사람들이 너무 많이 와서 얼굴만 도깨비처럼 떠다닌다고 해서 이렇게 불렸다고도 한다. 도깨비시장에는 ‘오래된 골목’에서 볼 수 있는 가게들이 늘어서 있다. 미용실과 이발관, 세탁소, 철물점, 점집 등이 꼭 70~80년대 풍경을 보는 것만 같다. 하지만 이런 모습도 곧 사라질 것이다. 한남동에도 현재 재개발 사업이 진행되고 있다. 골목길을 걷다보면 재개발 추진사무소에서 나온 사람들이 주민명부를 들고 대문을 두드리며 조사를 벌이는 장면을 심심찮게 볼 수 있다. “한남동에 이런 곳이 있다고 하면 다들 놀라. 2011년에 재개발이 된다고 하더라구. 그때가 되면 동네가 지금보다는 번듯해지겠지. 그렇다고 해도 우리 같은 원주민한테야 뭐 좋을 게 있을까.” 도깨비시장에서 만난 한 아주머니는 이렇게 말하며 시장바구니를 들고 계단으로 종종걸음 쳐 사라졌다. “요즘 채소값이 너무 올라서 장에 나오기도 무서워”하는 말을 남기며. 아주머니가 지나간 길 위에 저녁이 내리고 가로등불빛이 희미하게 밝아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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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지금 포토갤러리에서는 출사미션 <아름다운 한국> 시리즈 4탄 <나의 사진기로 보길도를 담는다>가 진행 중에 있습니다. 참여해주신 분들 중 총 10분의 사진을 선정해 5월 29일(금)에 노출될 '길숲섬 보길도' 편에서 소개해드릴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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