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한 취미생활 여행

흑석동 효사 4,5길

행복을 만드는 사람들 2011. 10. 18. 11:55

예전에는 흑석동 하면 달동네가 떠올랐지만 요즘에는 흑석동 하면 뉴타운이라는 말이 먼저 떠오른다. 한때 서울의 대표적인 달동네를 품은 동네였던 흑석동. 시인 경주는 어느 인터뷰에서 “서울에 상경해서 흑석동 달동네 교회의 기도방을 빌려 지냈다. 주말이면 신도들 기도시간에 맞춰 방을 비우고 옥상에서 시간을 보냈다”고 했다. 정치인이자 소설가인 김한길도 흑석동 시절을 이렇게 말했던 적이 있다. “스무 살 시절, 내가 흑석동 산꼭대기 집에 살 때에도 큰 물난리가 있었다. 그렇지만 산꼭대기 집은 안전했다. 내가 마지막으로 떠내려가는 거라면 그거야 억울할 것도 없었다. 산꼭대기 집에 살아서 좋은 게 이런 거지 뭐 라고 나는 생각했다.” 하지만 이제 다 지나간 이야기다. 흑석동 대부분은 재개발이 이루어졌다. 그리고 지금도 재개발은 여기저기에서 여전히 진행 중이다.

  • 1 주민센터를 지나 가파른 계단을 올라가면 아래쪽과는 전혀 다른 풍경이 펼쳐진다.
  • 2 흑석동 173번지의 저녁. 마을 사람들이 하나둘 모여 하루의 일에 대해 이야기를 나눈다.
  • 3 흑석동 정상부분을 가로지르는 효사 5길. 여의도 불꽃축제가 열릴 때면 사진작가들로 가득 찬다.
  • 4 재개발의 흔적. 흑석동을 걷다보면 이런 을씨년스러운 풍경과도 만난다.

 

 

 

동네 사이사이 숨은 골목

인터넷에 흑석동으로 검색하면 ‘뉴타운’ ‘프리미엄’ ‘지하철 9호선’ ‘하반기 재개발’ ‘재테크’ ‘투자’ 등의 단어를 가진 뉴스가 줄줄 이어진다. 그나마 옛 골목 풍경을 가지고 있는 곳은 173번지 일대. 동양중학교 주변이다. 중앙대학교 병원에서 흑석동 주민센터를 지나 언덕을 향해 곧장 올라가면 된다. 처음 만나는 길은 효사길이다. 효사길 풍경에 다소 놀랄 수도 있다. 머릿속에 그리고 있던 달동네 풍경과는 완전히 다른 풍경이 펼쳐지기 때문이다. 근사한 고급주택들이 길 양편으로 높은 담을 두르고 서 있다. 효사길 주변에 약 1백 채 가까이 밀집해 있다고 한다. 지난해 효사길은 뉴스를 탔다. 지난해 8월 흑석 뉴타운 7지구로 추가 지정됐는데, 주민 250여 명은 ‘경관 좋고 살기 편한 동네를 왜 떠나야 하냐’며 뉴타운 지정을 취소해달라는 행정심판을 청구했다. 효사길에 만난 한 주민은 “이곳처럼 주거환경이 좋고 전망 좋은 곳이 없다. 돌아보면 알겠지만 부술 만한 건물도 없다. 왜 뉴타운을 하려는지 이해가 안 간다”고 불만을 털어놓았다.

 

효사길에서 효사4, 5길이 갈래를 친다. 급한 경사의 계단길이다. 언덕 정상으로 향한다. 계단은 건장한 젊은이들도 한 번에 오르기 힘들 정도로 가파르고 길다. 쉬엄쉬엄 계단을 오르다 중간 즈음에 이르면 효사길과는 사뭇 다른 풍경이 펼쳐진다. 붉은 기와를 얹은 도시형 한옥과 슬레이트 지붕을 인 낡은 집들이 붙어 있다. 집집마다 화분을 내어놓은 집도 있고 지붕 위에 타이어를 올려 놓은 집도 눈에 띈다. 성준용 할아버지(71)는 흑석동에서 32년을 살았다. 대문 앞 공터에 내놓은 화분에는 나팔꽃이 예쁘게 피었다. 고추와 상추 등 채소도 심어놓았다. 집도 손수 지었다고 하셨다. 지난해까지만 해도 4대가 함께 살았는데 얼마 전 어머님이 돌아가시고 지금은 아들과 손주가 함께 산다고 했다. 저기 중대병원부터 저 아래까지가 전부 한옥이었지. 예전에 한강변에서 ‘에어 쇼’하면 전부 여기로 몰려와 구경하곤 했어. 그때나 지금이나 살기 좋은 건 마찬가지야. 공기도 좋고 전망도 그만이지. 성 할아버지는 “더운 날씨에 고생 많다”며 시원한 물 한 그릇을 내주셨다. “계단 끝까지 올라가 봐. 전망이 기가 막혀. 한강이 한눈에 내려다 보여. 야경 찍는다고 사진쟁이들이 많이 몰려 와.

 

 

흑석동 173번지 사람들

전망대에 오르면 아! 하는 탄성이 터져 나온다. 눈 아래로 한강과 밤섬이 한눈에 들어오고 강 건너 풍경이 와이드스크린처럼 펼쳐진다. 왼쪽부터 63빌딩과 서강대교, 마포대교, 원효대교, 한강철교, 한강대교, 남산타워가 바라보인다. 북한산도 조망할 수 있다. 난간 바로 앞쪽으로는 미루나무, 아카시아 나무들이 우거진 울창한 숲이 펼쳐진다. 전망대를 등지고 왼쪽 편이 173번지 일대다. 효사길 5. 아래쪽 마을과는 분위기가 딴판이다. 전형적인 골목 풍경을 보여준다. 낮은 지붕을 인 집들이 일렬횡대로 늘어서 있다. 한강대교를 북쪽에서 남쪽으로 건너다 보면 왼쪽 높은 언덕 위에 머리만 내놓고 있는 집들이 보이는데 바로 이곳이다. “여기 집이 들어선 지 한 50년 정도 됐을까? 아마 6.25 직후 피란민들이 몰려 들어서 동네가 만들어졌을 거야.” 나무 그늘 아래 의자를 내놓고 앉아 있던 김창님 할머니(78)는 ‘그때 그 시절’을 이야기했다. “그때만 해도 죄다 판잣집이었지. 사는 게 지금하고는 비할 데가 아니었지. 물이 안 나와서 저기 동양중학교까지 물 뜨러 다니고 그랬어. 옆에 있던 한 아저씨가 김 할머니의 말을 거든다. “가스와 하수관이 지난 99년인가 들어 왔어요. 지금은 그나마 살기가 많이 나아진 거에요.

 

어느덧 해질 무렵이다. 야경을 찍는다고 삼각대를 세우며 부산을 떨고 있으려니 아저씨 한 분이 대문을 열고나와 요구르트를 슬쩍 내민다. 그러면서 야경 사진을 찍기에 좋은 ‘명당’이 있다며 손을 잡아 끈다. “여기가 한강과 63빌딩을 같이 찍기에 제일 좋은 명당이에요. 저기 전망대보다 훨씬 좋아요. 여의도 불꽃축제 할 때는 이 자리 잡으려고 난리법석이요. 2년 전인가 여기서 일몰 사진을 찍은 사람이 대상을 탔다고 그러던데 그 이후로는 안 오네요, 하하.” 하루 일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온 퀵 서비스 청년도 카메라에 호기심을 보이며 “이런 카메라는 얼마나 해요?”하며 이런 저런 말을 건다. 청년은 전남 해남에서 올라왔다고 한다. “그나마 가진 돈으로 방을 얻으려다 보니 여기에 오게 됐네요. 몇 년 살다 보니 정도 붙고 그렇네요. 공기도 좋고 이웃들끼리도 모두 친하고. 고향처럼 편하게 지내고 있어요.

 

흑석동 173번지에서는 여기저기서 아름다운 것들을 많이 만날 수 있다. 담장 밑으로 수줍게 핀 나팔꽃, 대문 앞 화분에 탐스럽게 열린 방울토마토며 고추, 오이가 탐스럽다. 여름 뭉게구름은 한강에서 불어오는 바람을 타고 지붕 위에 사뿐히 내려앉는다. 그리고 노을은 또 어떤지. 해질 무렵이면 적자색 노을이 마을로 슬금슬금 내려 앉는다. 잿빛벽을 물들이는 노을은 가슴 한 켠을 먹먹하게 만든다. 서울 흑석동 173번지. 마음씨 좋은 사람들이 살고 있는 곳. 시간이 되신다면 꼭 한 번 가보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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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갑수
대학에서 국문학을 전공했다. 1997년 계간 <문학동네>에 시 '밀물여인숙'을 발표하며 등단했으며, 시집 [단 한 번의 사랑]을 펴냈다. 일간지와 여행 잡지에서 여행 담당 기자로 오랫동안 일했다. 여행사진 에세이 [당분간은 나를 위해서만]과 [구름 그림자와 함께 시속 3km]를 펴냈다. 지금은 시를 쓰고 음악을 들으며 자유롭게 여행하고 있다.

사진 최갑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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