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한 취미생활 여행

이태원 솔마루 2길

행복을 만드는 사람들 2011. 10. 18. 11:56

이태원은 참 재미있는 동네다. 유흥가와 부자동네, 골목이 이리저리 얽힌 서민동네가 공존한다.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태원 하면 외국인들이 즐겨 찾는 클럽과 음식점, 옷가게, 카페, 레스토랑이 밀집해 있는 지역으로만 알고 있을 뿐이다. 우리가 알고 있는 이태원에서 한 발자국만 더 들어가보자. 지금까지 우리가 경험하지 못했던 새로운 이태원과 만날 수 있다. 현란한 네온사인으로 번쩍이는 시끌벅적한 이태원로에서 소방서길을 따라 올라가면 회교사원이 나오고, 회교사원 앞으로 2차선 도로가 쭉 뻗어나간다. 도깨비시장길이다. 도깨비시장길을 따라가면 해맞이길과 만난다. 해맞이길은 골목비경 두 번째 시간 한남동 편에서 소개한 바 있다. 분식집과 미용실, 이발관 등 서민들 가게가 옹기종기 모여 있는 곳이다. 이태원의 골목길 역시 도깨비시장길에서 시작한다.

이태원 솔마루2길 지도 보기

  • 1 시멘트로 가득한 잿빛 공간 속에서 이런 원색의 장면과 만나면 슬그머니 기분이 좋아지곤 한다.
  • 2 영화 <인정사정 볼 것 없다>에 등장했던 계단. 도입부의 살인장면이 이곳에서 촬영됐다.
  • 3 회색빛 벽에 늘어진 주홍빛 능소화. 솔마루2길.
  • 4 우리가 알고 있는 화려한 이태원에서 한 걸음만 들어가면 서민들의 생활공간인 이태원과 만난다.

 

 

 

‘골목길 구역’마다 각기 다른 풍경을 보여줘

이태원에는 크게 네 군데의 골목길 구역이 있다. 첫 번째는 제일기획 건물과 순천향병원 사이에 놓인 수비길 일대. 길 너비도 넓은데다 차량 통행이 많기 때문에 옛 골목의 향취는 거의 느낄 수 없다. 하지만 쌀가게와 의상실, 목공소, 세탁소, 슈퍼마켓, 부동산, 철물점 등 서민들의 오래된 생활형 가게들이 모여 있어 푸근한 느낌을 준다. 두 번째 구역은 회교사원과 제일기획 사이에 자리한 솔마루길과 솔마루1길 일대다. 제법 골목 분위기가 나고 공터와 갈림길, 막다른 길, 축대, 계단 등 골목의 구성 요소를 얼추 갖추고 있다. 막다른 길도 몇 개 숨기고 있다. 이 구역의 대표 장면을 꼽으라면 단연 두 개의 넓고 큰 계단이다. 이태원의 주 도로인 이태원로에서 솔마루길을 향해 오르는데 이 가운데 명동칼국수가 있는 큰 계단은 왠지 우리에게도 낯익다. 영화 <인정사정 볼 것 없다>에서 도입부의 살인 장면을 촬영한 곳이다. 중간에 한번 끊어지며 오르는데, 넓고 큰 계단의 위용이 압권이다. 이 계단을 사이에 두고 계단 아래쪽 이태원의 번잡함과 골목의 한적함이 경계를 짓는다.

 

세 번째 구역은 회교사원에서 보광동 방면으로 내려가는 소방서길 일대다. 옛날 미군들을 상대하던 윤락업소가 있던 곳이라고 한다. 지금은 아랍인들과 동남아시아인들이 많이 살고 있다. 이 길을 걷다 보면 여행자가 아닌 한국에서 생활하는 주민으로 보이는 외국인들을 심심찮게 만날 수 있다. 네 번째 구역은 솔마루2길 일대다. 회교사원을 등지고 도깨비시장길을 따르다 보면 왼쪽으로 골목이 기웃이 나 있는데, 이 길이 솔마루2길이다. 이태원 골목의 하이라이트를 보여주는 구역이다. 도깨비시장길에서 가지를 치는 솔마루2길은 모두 4. 계단을 타고 급경사를 이루며 구불거리며 내려간다. 이 길들은 솔마루2길과 다시 만난다. 그러니까 솔마루2길은 도깨비시장길과 나란히 달리는 뼈대길이기도 하고 도깨비시장길과 사다리처럼 이어져 있는 가짓길이기도 한 셈이다. 아래쪽 뼈대길인 솔마루2길은 대사관길, 솔마루길 등으로 다시 갈래를 치며 한남동 쪽으로 내려간다.

 

 

보기에도 아찔한 철제 계단들

뼈대길인 솔마루2길에서 도깨비시장길을 향해 모두 12개의 골목이 올라간다. 그리고 한남동오거리 방면으로 7개의 골목길이 가지를 치며 내려간다. 수비길과 솔마루길, 솔마루1, 소방서길 등 이태원의 골목을 돌아보려면 여정이 만만치 않다. 땀 꽤나 흘릴 각오를 해야 한다. 솔마루길에 들어선 집들 중 70~80퍼센트가 2~3층의 다세대 주택이다. 모두 1980년대 이후 새로 들어선 집들이다. 제일기획 앞에서 솔마루2길에 들어선 집들을 한눈에 바라볼 수 있다. 붉은 벽돌과 회색빛 시멘트, 초록색, 푸른색 벽으로 칠한 주택들이 기하학적으로 어울려 빼곡하게 서 있다. 마치 솜씨 좋은 기능공이 레고 블록을 공들여 쌓은 듯한 느낌을 받는다.

 

솔마루2길에서 가장 눈길을 끄는 것은 철제계단이다. 보기에도 아찔한 철제계단이 벽마다 걸려 있다. 좁은 골목길에 집들이 다닥다닥 들어섰고 공간을 효율적으로 활용하려다 보니 어쩔 수 없이 철제계단이 놓이게 된 것 같다. 철제계단이 시멘트 계단보다 제작비도 적게 들고 공간 효율성이 좋다는 것도 까닭이겠다. 무거운 빨래를 지고 계단을 오르내리는 아주머니들의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손에 땀이 밴다. 계단은 옥상으로 올라가는 것도 있고 문으로 난 것도 있다. 달팽이처럼 빙글빙글 원을 그리며 올라가는 것, ㄱ자형 등 형태도 다양하다. 골목을 걷다 하늘을 올려다보면 으레 철제계단이 머리 꼭대기에 걸려 있다. 솔마루2길의 계단도 다양한 모습을 보여준다. 물결처럼 부드럽게 흘러내리는 것도 있고 서너 갈래로 갈라지는 것도 있다. 호흡이 짧은 것도 있고 긴 것도 있다. 뱀처럼 긴 곡선을 그리며 집 사이를 유유히 빠져나가는 것도 있다. 깎아지른 듯 경사가 급한 계단도 많다. 난간도 설치되어 있지 않아 보기만 해도 아찔하다. 짧은 댓돌이 유난히 많다는 것도 인상적이다. 좁은 골목을 사이에 두고 다세대주택이 들어서다 보니 댓돌이 방문객의 걸음을 유인하는 수단으로 사용된 것 같다.

 

 

제멋대로 꼬인 골목의 변주

골목길은 제멋대로다. Y자형, L자형, S자형 등 생김새도 다양하다. 자전거 한두 대를 세워둘 만한 작은 공간에거리가 만들어진 곳도 있다. 쭉 뻗어내려 가다가 갑자기 직각으로 뒤틀리기도 하고 둥글게 뻗어나가기도 한다. 골목길이 이처럼 꼬이다 보니 문과 창문의 어울림 또한 입체적이다. 길을 향해 나란히 난 것들의 대부분은 뼈대길인 솔마루2길에 위치하고 있다. 골목으로 들어서면 문과 창문이 비스듬히 혹은 정문으로 마주보기도 한다. 높이를 달리 해 앞을 나란히 보고 있는 경우도 많다. 가짓길인 솔마루2길 가운데 옅은 청색의 5층 건물이 한 채 서 있다. 계단이 파고 든 골목 쪽으로 난 면에서 보면 4, 계단 1단을 올라가서 보면 3층 건물이다. 각 면마다 비슷한 수의 문과 창이 나 있는데 모양도 제각각이고 위치도 모두 다르다. 솔마루2길에서 가장 인상적인 건물이기도 하다.

 

어깨를 맞대고 있는 한남동 해맞이길과 마찬가지로 솔마루2길 역시 햇빛이 귀하다. 그래서인지 빨래와 화분 등 햇빛을 필요로 하는 것들의 대부분은 옥상으로 올라가 있다. 골목마다 유난히 쓰레기를 버리지 마시오’, 주차금지라고 쓰인 경고문도 많이 붙어 있다. 쓰레기와 주차문제가 골목 생활의 가장 불편하고 심각한 문제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이태원 골목은 기하학적인 건물의 조형미, 문과 창문의 어울림, 그리고 다양한 길의 유형 등 골목의 모든 요소를 두루 갖추고 있다. 골목의 진경이라고 부를 만한 이유다.

 

  • 골목비경 서울 이태원동  더보기
  •  

    090705:PM:06:04
    하늘날개 님

  •  

    이방인의 거리
    천사날개 님

  •  

    짝맞추기
    강 영종 님

  •  

    그림자가 그리는 그림
    thywings 님

  •  

    고난의 연속/외면
    사이비 님

  •  

    이태원의 밤
    딸마니아 님

  •  

    사진세상..
    해리요 님

  •  

    이태원시장
    jungmail104 님

  •  

    일방통행..
    불가리스 님

  •  

    아리마와 수베르
    다찌 님

 

 

 

  • 지금 포토갤러리에서는 출사미션 <아름다운 한국> 시리즈 8탄 <나의 사진기로 안동하회마을을 담는다>가 진행 중에 있습니다. 참여해주신 분들 중 총 10분의 사진을 선정해 9월 30일(수)에 노출될 '소읍기행 안동하회마을' 편에서 소개해드릴 예정입니다. 많은 응모와 참여 부탁 드립니다.
  • 기간 | 2009.9.07 ~ 2009.9.25

 

 

 

최갑수
대학에서 국문학을 전공했다. 1997년 계간 <문학동네>에 시 '밀물여인숙'을 발표하며 등단했으며, 시집 [단 한 번의 사랑]을 펴냈다. 일간지와 여행 잡지에서 여행 담당 기자로 오랫동안 일했다. 여행사진 에세이 [당분간은 나를 위해서만]과 [구름 그림자와 함께 시속 3km]를 펴냈다. 지금은 시를 쓰고 음악을 들으며 자유롭게 여행하고 있다.

사진 최갑수

'행복한 취미생활 여행' 카테고리의 다른 글

종로2가 관철동  (0) 2011.10.18
돈의동 쪽방  (0) 2011.10.18
흑석동 효사 4,5길  (0) 2011.10.18
한남동 해맞이길  (0) 2011.10.18
부암동 능금나무길  (0) 2011.10.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