답사를 하면서 무언가 색다른 느낌이 들 때, 거기에는 나름의 연유가 있다. 예를 들어, 곧게 뻗은 다른 길들과 달리 유려한 선을 그리며 굽이쳐 뻗은 길을 보았다면, 아마도 과거에 하천이었거나 아직도 아래쪽으로 물이 흐를 가능성이 높다. 자연스럽게 길이 나고 곳곳에 큰 나무들이 있다면 동네 역사가 오래되었음을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그렇다면 골목이 반듯하게 뻗은 종로2가 관철동 블록에서 빌딩들 사이로 ‘모를 세우고 삐딱하게 들어선 건물’이 보인다면, 그 풍경에는 어떤 까닭이 숨어있는 것일까? | |
종로2가 관철동 지도 보기
관철동 골목 안. 빌딩 사이로 갈비집 건물의 '모'가 보인다.
가장 번화했던 ‘종루 아랫동네’ 관철동
우리에게 너무도 친숙한 종로는 이름 그대로 ‘종이 있는 가로’였다. 남대문을 지나 광통교를 건너 종로와 만나는 지점 한가운데에 종루가 있었다. 2층으로 지어져 아래로는 사람이나 우마차가 지나고, 위쪽 누(樓)에는 종이 설치되었다. 지금은 후손 격인 종각이 ‘보신각’이란 이름으로 길가에 비켜서 있는 것과 대조적으로, 종루는 원래 그 규모와 위치 면에서 대단한 상징성을 지니고 있었다. 현재의 보신각이 일 년에 한 번 제야의 종을 울리지만, 종루의 종은 매일 인정(저녁 10시)과 파루(새벽 4시)에 28번과 33번 타종했다. 하루도 빠짐없이 서울 한복판에서 적막한 도성을 향해 퍼져간 종소리는 성문을 여닫는 시각을 알리는 동시에, 나라와 백성이 모두 평안하다는 중요한 메시지이기도 했다. 그리고 그 소리는 태조에서 고종에 이르는 조선왕조 500여 년 동안 계속되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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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인근 빌딩 위에서 내려다본 관철동 골목. 가운데 건물이 삐딱하게 들어서 있다.
- 2 서울역사박물관에 가면 볼 수 있는 옛 종루와 시전의 재현모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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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철동은 그 종루의 바로 아랫동네였다. 정확하게는 종루를 중심으로 사람들이 구름처럼 몰려드는 운종가, 시전 바로 뒤편에 자리잡고 있었다. 한글학회에서 지은 <한국지명총람: 서울편>을 보면 관철동 안에는 갓전골, 관잣골, 소금전골, 신전뒷골, 청포뒷골 등의 마을이 자리하고 있었다. 마을명은 모두 인접한 시전에서 다루는 물품에서 유래했다. 머리에 쓰는 갓, 남자이마에 두르는 망건에 다는 관자, 소금, 신발, 천이나 피륙 등 동네에는 물품과 관계한 상인들이 살고 있었다. 여기에 조정의 하급관리, 역관, 의원, 화공 등이 모여 살아 상업이 무척 활발했다고 전해진다. | |
전쟁의 상흔과 남은 조각들
4년 전 처음 답사를 했다. 종로2가와 관철동에는 건너편 종로 북쪽과 같은 ‘피맛(避馬)길’을 찾을 수 없었다. 사람이 많이 모이는 도심부여서 크게 하나로 묶여 상업지역으로 개발된 것이라 짐작했다. 그런데 청계천과 가까운 아래쪽을 둘러보면서 어딘가 관철동의 분위기와는 다른 모습들이 발견되기 시작했다. 남서쪽 ㄱ자로 꺾어진 한 골목에서 안으로 더 꺾어 들어가자 이상한 모양의 마당이 등장했다. 남쪽 중간에는 빌딩들 사이로 골목이 나면서, 큰길로 모를 내밀고 삐딱하게 들어선 건물이 있었다. 남북방향으로 건물이 놓이는 대개의 관철동 건물들과는 방향이 확연히 달랐다. 동쪽으로 나아가 삼일빌딩 근처로는 2층짜리 작은 가게들이 모여 아기자기한 풍경을 이루고, 뒤쪽으론 관철동에선 볼 수 없었던 한옥이 골목을 끼고 식당으로 쓰이고 있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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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네온으로 가득한 지금의 관철동 풍경.
- 2 폐허가 된 1954년 종로 풍경. <사진제공 : 서울, 20세기 100년 사진의 기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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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 왜 이같은 이질적인 부분, 다른 조각들이 생겨난 것일까? 의문을 가지고 있을 때 한 장의 사진을 발견했다. 1954년 서울 시내의 모습을 담은 것으로, 사진 한복판으로 전후 복구사업이 한창이던 관철동이 보인다. 네모 반듯하게 길을 닦고 있는 가운데, 낮은 건물들이 무리를 이루며 군데군데 남아있다. 그리고 그 위치는 대체로 답사에서 궁금해했던 부분들과 맞아 떨어졌다. 결국 관철동 대부분의 지역은 전쟁으로 인해 파괴된 부분에 새로 길을 닦고 건물이 들어섰으며, 위의 ‘이질적인 부분’은 피해를 입지 않은 곳이라 말할 수 있다. 1912년 지적원도와 현재를 비교해 보니, ㄱ자 골목이 있던 남서쪽 부분과, 남쪽 가운데 건물의 모가 보이는 골목에서 길과 땅 모양이 많이 일치하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관철동에 행해진 전후 복구사업의 정식명칭은 ‘제1중앙토지구획정리사업’으로, 손정목 선생이 지은 <서울 도시계획이야기 1권>에 그 전후의 사정이 자세히 설명되어 있다. | |
1912년 지도와 현재의 지적도를 겹쳐 본 종로2가와 관철동.
남아있는 골목의 풍경
그럼 남아있는 골목은 어떤 모습을 하고 있을까? 청계천을 따라가다 보면 반원형 아케이드 간판이 보인다. 골목 안에 자리한 두 가게의 이름이 위아래로 나란히 겹쳐져 있다. 공동간판인 셈이다. 안으로 들어가면 파라솔 테이블과 플라스틱 빨간 의자가 놓인 약간 넓은 마당이 나오고, 골목길은 계속 뻗어 둘로 갈라지면서 모가 보이는 일식가옥에 이른다. 4년 전이나 지금이나 가게 이름은 같지만 간판의 내용은 달라졌다. 예부터 내려오는 두 개의 골목 중 왼쪽, 즉 나무가 자라있는 좁은 골목은 아무래도 가게에서 쓰는 물건이나 가설지붕 등이 얹혀서 지나다니기 거북하다. 사람들은 주로 오른쪽으로 다니는데, 골목 안 갈비집에서 가꾸는 화분과 이웃한 식당에서 내놓은 밥솥과 부뚜막, 그리고 검은 가죽 소파 등이 길에 나와있다. 더 들어가면, 한쪽으론 주차장이 들어차 있고 반대쪽 골목 한 켠은 작은 창고 같은 철물점과 밤마다 불을 밝히는 포장마차가 있다. 전체적으로 조금 외지고 한적한 모습이다. 하지만 그러한 차분함도 잠시, 골목은 청계천 쪽에 새로 지어진 고층건물과 만나면서, 관철동 안쪽 길과 새 건물 아래로 바삐 오가는 사람들의 소음에 섞여 그 존재감은 잊혀지고 만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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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인근 빌딩에서 내려다본 관철동 골목을 스케치했다. 길은 거의 과거 그대로의 모양을 하고 있다.
- 2 골목 안 포장마차 사이로 이번에는 관철동 블록 안쪽 건물의 '모'가 보인다.
- 3 관철동 술집 위로 보이는 한옥지붕의 박공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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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들어서기 어려웠던 왼쪽 골목은, 번화가로 나와 북쪽 방향에서 다시 들어가 보면 느낌이 사뭇 색다르다. 여기서도 골목 안에 자리한 가게들의 간판과 메뉴들이 다닥다닥 시끄러운 광고구조물로 세워지고, 그 면을 지나면 빨간 카펫이 깔린 구불구불하고 묘한 골목이 나타난다. 조금은 야한 부조장식이 아직도 그 자리를 지키고 있다. 사람들 손이 많이 닿은 듯 부분부분 낡아 있는 것도 흥미롭다. 안쪽에 있는 술집은 큰 변화가 없는데 밖에서 자세히 보니 한옥지붕의 박공판이 보인다. 박공판은 기와지붕의 옆면을 막는 ㅅ자 모양의 나무판이다. 오래된 두 길이 만나는 지점에 일본식 건물이 들어선 것이 아쉬웠는데, 바로 뒤쪽에 한옥이 구조체라도 남아있다는 사실이 위안이 되었다. | |
관철동에 피맛길은 사라졌지만
종로 한복판에 종루가 있었던 과거의 영화를 되돌리기란 어려운 일이다. 하지만 여전히 종로2가와 관철동은 예전과 다름없이 사람들이 모여들고 물건을 사고팔며, 마시고 즐기는 서울의 큰 중심이다. 그리고 그 안에는 전쟁의 시련에서 살아남은 오래된 시간의 조각이 있다. 사람들의 관심에서 멀어져 있을지 모르지만, 나름의 존재방식으로 한 켠에 자리를 지키며 오늘도 관철동 속에 색다른 풍경을 만들어 내고 있다. 기회가 된다면 다음에는 관철동 번화가에 숨어있는 작은 가게들의 이야기를 하고 싶다. 구멍가게, 점집, 복덕방, 복권방, 꽃집, 포장마차, 열쇠, 구두수선 등 꼽아보면 수많은 그 작은 존재들의 기묘한 삶의 형상을 살펴보는 일도 흥미로운 작업이 될 것이다. 끝으로 문제 하나를 내고자 한다. 본 글에서 말한 한옥 이외에 종로2가 관철동 블록에는 숨겨진 한옥이 있다. 그곳에 자리한 가게 이름은 무엇일까? 가장 먼저 알아맞히신 분에게 훗날 이 글이 책으로 묶일 때 무료로 한 권 드릴 것을 약속한다. | |
관철동 블록 안에 숨겨져 있는 유일한 한옥식당의 내부.
- 글·사진 조정구 / 건축가
- 2000년 구가도시건축(http://guga.co.kr/)을 만들어 ‘우리 삶과 가까운 일상의 건축’에 주제를 두고, 도시답사와 설계 작업을 하고 있다. 서울진풍경은 10년간 지속해온 답사를 글과 그림으로 정리한 것이다. 대표작으로 가회동 ‘선음재’, 경주 한옥호텔 ‘라궁’ 등이 있다. 라궁으로 2007년 대한민국 목조건축대전 대상을, 2008년에는 안동군자마을회관으로 한국건축가협회 아천상을 수상했다.
실측조사 및 도면 오네타 사치코, 강동균
그래픽 조지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