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냥 놀러 간다고 생각하자. 스니커즈 뒤축을 구겨 신고 가을 어느 오후를 어슬렁거리는 거다. 골목이 우리에게 주는 잠언, 미학적 충고 등등은 잊어버리자. 그냥 맘 내려놓고 즐기는 거다. 택시를 타도 되고 녹색 마을버스를 타도 된다. 내려야 할 곳은 부암동 주민센터 앞. 오른쪽으로는 인왕산 비탈을 따라 이어지고 왼쪽으로 낮은 집들이 서 있다. 광화문에서 30분 밖에 걸리지 않는, 여기는 분명 서울 한복판이다. 부암동은 이곳에 부침바위가 있었던 데서 유래했다고 전한다. 작은 돌을 대고 자기 나이만큼 문지르면 돌을 떼는 순간 바위에 돌이 붙고 아들을 얻는다는 전설이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도로확장으로 없어졌다고 한다.
골목은 크게 두 부분으로 나뉜다. 큰길인 자하문길을 가운데 두고 무계정사길 시리즈가 펼쳐지고 길 건너편으로 백사실 계곡으로 향하는 능금나무길, 환기미술관길, 백사실길 시리즈가 나온다. 두 길의 분위기는 딴판이다. 백사실 계곡으로 향하는 길은 무계정사길에 비해 좀 세련됐다. 고급스럽다. 드라마 <커피프린스 1호점>에서 이선균의 집으로 등장한 산모퉁이 카페가 있는 곳이기도 하다. ‘Art for Life’이라는 이탈리안 레스토랑도 있다. 동양방앗간, Art for Life, 산모퉁이가 길을 따라 차례로 나타난다. 한가로운 주택가와 카페들을 지난다. 능금나무길 주택에는 담쟁이넝쿨이 참 많다. 붉게 물든 담쟁이넝쿨이 만추의 낭만을 느낄 수 있게 해준다. 삼청동과 비슷한 분위기이지만 왜지 더 포근한 느낌을 들게 하는 건 왜일까. 아마도 자연과 어우러져 있어 그런 것이 아닐까 싶다.
부암동에서는 카메라를 든 젊은이들이 골목 이곳 저곳을 기웃거리는 것도 쉽게 볼 수 있다. 요즘 골목마다 디지털 카메라를 든 이들을 쉽게 볼 수 있지만 부암동에서는 필름 카메라를 든 이들이 유독 많은 것 같다. ‘로모’, ‘홀가’와 같은 토이 카메라에서 ‘콘탁스’, ‘라이카’, ‘야시카’, ‘롤라이’ 등 클래식 카메라를 든 이들도 자주 눈에 띈다. 그러고 보니 부암동에는 왠지 필름 카메라가 잘 어울릴 것도 같다. 주택가를 지나면 울창한 숲이 펼쳐진다. 백사실 계곡이다. ‘오성과 한음’의 주인공 이항복의 별장이 있던 곳이다. 계곡에는 단풍이 진하다. 바람이 불면 숲이 흔들린다. 여름에 왔다면 발 담그고 두세 시간 보내기 좋겠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