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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덮인 역사 앞, 그리운 사람이 기다릴 것만 같은… ‘겨울풍경이 아름다운 간이역’

행복을 만드는 사람들 2012. 1. 11. 23:48

 

눈덮인 역사 앞, 그리운 사람이 기다릴 것만 같은… ‘겨울풍경이 아름다운 간이역’]

 

오고 가는 나그네들의 쉼표와 느낌표만 있을 뿐 간이역에는 마침표가 없다. 만남과 이별이 교차하고 그리움과 향수가 묻어나는 추억의 간이역은 시골 고향집처럼 항상 그곳에서 그 자리를 지키고 있다. 자동차가 넘쳐나고 시속 300㎞로 달리는 KTX에 존재감마저 희미해졌지만 간이역에 가면 그리운 사람과 그리운 사랑을 만날 것만 같다. 겨울풍경이 아름다운 간이역으로 가는 기차표를 끊어본다.

영동선 정동진역(강원 강릉시)

서울 광화문의 정동쪽에 위치한 정동진역은 1997년 이전까지는 그리 특별할 것이 없는 바닷가 간이역이었다. 그러나 드라마 '모래시계'에서 주인공 혜련(고현정)이 사복경찰에게 잡혀가는 인상적인 장면이 전파를 타면서 주말에는 수천 명이 찾는 관광명소로 부상했다.

정동진역은 우리나라에서 해변과 가장 가까운 간이역으로 영동선 철로와 7번 국도, 그리고 해풍에 비스듬히 누운 '고현정 소나무'가 트레이드마크. 역사 주변에 펜션, 모텔, 음식점이 우후죽순으로 들어서 호젓한 맛은 없어졌지만 플랫폼에서 해변으로 발을 내딛는 순간 가슴이 뻥 뚫린다.

어화들이 둥둥 떠 있는 수평선에서 연출하는 해돋이는 정동진을 대표하는 풍경. 서울과 부산 등에서 밤을 새워 달려온 기차와 관광버스가 승객들을 토해내는 새벽에는 좁은 역사와 플랫폼은 물론 해변까지 발 디딜 틈이 없을 정도로 붐빈다.

모래시계 공원과 정동진 일대가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영인정, 산 위에 배 형태로 들어선 선크루즈호텔과 정동진참소리박물관 등 볼거리가 많다. 정동진행 열차는 청량리역, 동대구역, 부전역, 영주역 등에서 출발한다. 주말에는 무궁화호 열차가 하루 11차례 왕복 운행한다. 청량리역에서 정동진역까지 약 6시간(정동진역 033-520-2523).

태백선 추전역(강원 태백시)

함백산(1573m) 중턱에 위치한 추전역은 우리나라에서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한 기차역으로 싸리나무가 많아 추전(杻田)이라는 지명이 붙었다. 해발 855m에 자리하고 있지만 매봉산 등 주변에 해발 1300m가 넘는 산들에 둘러싸여 오히려 아늑한 골짜기처럼 느껴진다.

추전역은 태백선의 여느 역처럼 석탄을 수송하기 위해 1973년에 생겨났다. 찾는 사람이 드문데다 석탄산업 쇠퇴로 더욱 고립돼 현재는 열차가 정차하지 않는다. 겨울에 부정기 관광열차인 눈꽃열차가 잠시 들르지만 기념사진 한 장 찍을 시간밖에 정차하지 않아 갈수록 외로움을 타고 있다.

청량리역에서 기차를 타면 고한역을 지나자마자 함백산을 관통하는 4505m 길이의 정암터널을 통과한다. 추전역에서 정암터널까지는 오르막이므로 우리나라에서 가장 높은 기찻길은 정암터널 내부에 있는 셈이다. 타고 내리는 승객이 없어 대합실도 사라진 추전역에는 이따금 자동차를 타고 찾아오는 여행객들을 위해 방명록이 비치돼 있다.

추전역과 가까운 용연동굴은 해발 920m로 우리나라에서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한 지하세계. 동굴 내에는 종유관, 종유석, 석순, 유석, 동굴산호 등 다양한 종류의 동굴생성물이 성장하고 있다. 태백역에서 추전역까지 약 6㎞로 자동차로 15분 소요(추전역 033-553-8550).

정선선 아우라지역(강원 정선군)

'아리랑의 고장' 정선은 우리나라에서 둘째라면 서러워할 정도로 오지다. 요즘은 도로가 포장되고 험한 고갯길 아래로 터널이 뚫렸지만 그래도 여전히 찾아가기 힘든 산골이다. 태백선 민둥산역에서 갈라져 나와 아우라지역까지 이어지는 38.7㎞의 정선선도 무연탄을 수송하기 위해 놓인 철도다.

아우라지역은 정선선 열차의 종착역이자 정선 레일바이크의 종착역. 레일바이크는 구절리역에서 출발해 아우라지역까지 운행된다. 아우라지는 두 개 이상의 물줄기가 합쳐지는 곳을 일컫는 순 우리말. 마을 이름을 따서 여량역이라 불렸으나 2001년 아우라지역으로 이름이 바뀌었다.

아우라지역 앞을 흐르는 강줄기는 조양강. 송천과 골지천이라는 두 물줄기가 만나 동강의 상류를 이룬다. 하류로 가면서 몇 개의 물줄기가 더 합쳐져 동강이 되고 다시 한강으로 흘러든다. 조선시대에는 주변 산에서 벌목한 목재를 뗏목으로 엮어 한양까지 운반했다고 한다.

송천과 골지천이 합류하는 절벽 아래에는 여송정이라는 정자와 함께 아우라지 처녀상이 서 있다. 시집가는 날 강을 건너다 나룻배가 뒤집혀 세상을 떠난 한 많은 여인의 상이라는 설이 전해온다. 겨울에는 강을 건너는 섶다리가 놓여 운치를 더한다. 민둥산역에서 아우라지역까지 무궁화호 열차가 하루 3차례 왕복 운행한다(민둥산역 033-591-1069).

영동선 승부역(경북 봉화군)

첩첩산중 산골역인 승부역이 세상에 알려지기 시작한 때는 십수 년 전 환상선눈꽃열차가 운행되면서부터. 겨울 나그네들을 위해 눈꽃열차가 하루 1∼3회 정차하는 것을 제외하고는 하루 4번 왕래하는 무궁화호가 바깥세상을 연결하는 유일한 통로역할을 한다.

승부역이 시나 기행문의 단골 소재로 유명해진 것은 '승부역은 하늘도 세 평이요 꽃밭도 세 평이나 영동의 심장이요 수송의 동백이다'는 짧은 글 때문. 1962년 이곳에 부임해 19년 동안 역무원으로 일하다 정년퇴직한 김찬빈씨가 역사 옆 화단 바위벽에 흰 페인트로 한 편의 시를 써놓았다.

터널과 승부역 사이에 위치한 역마을 동구에는 '영암선 개통비'가 우뚝 서 있다. 1955년 12월 개통한 영암선은 강원도 석탄을 수송하기 위해 영주에서 철암까지 87㎞ 구간에 33개 터널과 55개 교량을 세운 그 시절 최대의 역사. 순수 우리기술로 건설한 영암선 구간 중 가장 힘들었던 승부역에 이승만 대통령의 친필을 받아 개통비를 세운 것이다.

승부역 맞은편의 비룡산 산자락에는 한겨울에 눈꽃열차 승객들을 위해 먹거리촌이 들어선다. 양미리와 꼬치를 굽는 구수한 냄새와 연기가 계곡에서 아지랑이처럼 피어오르고, 낙동강을 막아 만든 얼음썰매장에는 관광객들을 위한 썰매가 마련돼 있다. 승부역에서 석포역까지 낙동강을 따라 가는 12㎞ 구간은 문화체육관광부가 선정한 문화생태탐방로(석포역 054-672-6788).

 

 
 

[여행메모-‘사라지는 스위치백 철도’] 통리역∼도계역 ‘마지막 체험’… 지질·탄광 소재 볼거리 풍성

중앙고속도로 제천 나들목에서 38번 국도로 갈아타고 영월과 정선을 지나 두문동재 터널을 빠져나오면 태백이다. 태백시내에서 계속 38번 국도를 타고 삼척 쪽으로 7㎞ 정도 달리면 통리역이 나온다. 산악철도와 스위치백 철도 구간만 타보려면 통리역∼도계역 왕복표를 끊으면 된다. 평일 기준 하행선 7회, 상행선 8회 정차한다(통리역 033-552-1788).

탄광도시였던 태백에는 지질과 탄광 등을 소재로 한 볼거리가 많아 자녀와 함께 찾기에도 좋다. 구문소 인근의 태백고생대자연사박물관은 삼엽충 등 고생대 화석을 전시한 곳으로 최근 문을 열었다. 석탄과 광산의 역사를 한눈에 살펴보는 태백석탄박물관, 폐광의 실제 갱도 등을 둘러보는 태백체험공원도 놓치기 아깝다.

태백 상장동 남부마을은 1960∼70년대에 함태탄광과 동해탄광 등의 사택이 밀집했던 지역으로 폐광과 더불어 주민들이 떠나 태백의 대표적 낙후마을로 꼽힌다. 남부마을은 최근 '뉴빌리지 태백운동' 차원에서 철길 경사면, 주택가, 하천 옹벽 등에 '탄광이야기마을'을 주제로 벽화를 그렸다.

70여 점의 작품 중 신입 광부의 신고식을 스토리텔링한 '오늘은 햇돼지 잡는 날'과 경기가 좋았던 시절에 만원짜리 지폐를 물고 다니던 강아지의 이야기를 그린 '만복이'의 벽화가 눈길을 끈다. 이밖에도 광부였던 주민들로부터 수집한 추억의 사진을 바탕으로 재구성한 탄광촌 일상이 잔잔한 감동을 불러일으킨다. 관광객들을 위해 추억의 도시락 등을 판매하는 포장마차와 음식점도 들어섰다.

태백의 별미는 한우고기. 태백산 한우는 해발 650m 이상의 청정 고지대에서 자란데다 재래식으로 도축해 육질이 신선하다. 황지동의 남청골한우(033-552-5015)는 한우고기 전문점으로 마늘, 참기름, 간장 등으로 무친 주물럭이 맛있다. 등심, 갈비살, 주물럭 200g에 각각 2만5000원(태백시 관광문화과 033-550-2085).
 
지그재그 철길 따라 오르락 내리락 여유와 긴장 속 태백산맥 넘었는데… ‘사라지는 스위치백 철도’
강원도 태백 통리역에서 잠시 휴식을 취한 강릉행 무궁화호 열차가 기적소리와 함께 플랫폼을 떠난다. 탄광촌의 '검은 추억'을 찾아 나선 승객들이 하얗게 얼어붙은 통리역 선로를 종종걸음으로 건너고, '푸른 추억'을 만들기 위해 바다로 떠나는 연인들은 입김 서린 차창에 하트를 그리며 블랙홀 같은 터널 속으로 빨려든다.

통리역에서 심포리역까지 태백산맥의 험준한 산허리를 'ㄹ'자로 에둘러 달리는 산악철도가 개통되던 1963년 5월 20일. 박정희 국가재건최고회의 의장은 통리역 구내에서 침목과 궤도를 연결하는 골드스파이크를 박았다. 서슬 퍼런 최고 권력자가 오지를 찾아 금빛 찬란한 골드스파이크를 박을 정도로 영동선 산악철도 개통은 한국 철도사에 획을 긋는 일대 사건이었다. 당시 세간에서는 도금한 골드스파이크를 두고 진짜 황금 논란을 벌였을 정도.

통리역에서 삼척 도계역까지 17㎞를 달리는 산악철도와 스위치백 철도 구간이 이제 추억 속으로 사라지게 됐다. 오는 6월 태백 동백산역과 도계역을 나선형으로 연결하는 16.2㎞의 솔안터널이 12년 6개월 만에 완공되기 때문이다. 아무리 빛의 속도로 살아가는 현대라지만 겨울에는 설국으로 변하고 봄에는 꽃동산을 연출하는 태백산맥을 더 이상 기차를 타고 넘을 수 없게 된다는 현실 때문인지 기적소리에도 안타까움이 묻어난다.

통리오일장으로 유명한 통리는 태백시 동쪽 끝자락으로 삼척 경계지역. 골짜기 지형이 여물통같이 생겨 통리라는 지명이 붙었다. 1930년대 중반까지만 해도 동해안을 오가려면 해발 720m 높이의 통리재를 걸어서 넘어야 했다. 그러나 일제강점기 시절에 태백과 삼척에 탄광이 개발되면서 석탄을 수송하기 위해 철도가 부설되고 통리재와 통리협곡은 탄가루를 뒤집어 쓴 증기기관차의 거친 호흡소리로 하루 종일 시끌벅적했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험준한 태백산맥 산허리를 조심조심 달리는 산악철도가 개설되기 전까지는 통리역에서 쇠줄로 심포리역에 도착한 기차의 기관차와 객차를 분리해 한 량씩 끌어올려야 했다. 1㎞ 남짓 떨어진 통리역과 심포리역의 표고차가 250m로 가팔라 기차가 오르내릴 수 없기 때문이었다. 당시 기차를 끌어올리던 인클라인 철도(강삭철도)는 사라졌지만 통리역에는 '마끼다리'로 불리는 시멘트 구조물이 폐허처럼 남아 당시를 설명하고 있다.

차창 밖으로 탄광도시 도계를 비롯해 태백산맥의 험준한 산봉우리들이 파노라마 풍경화를 그리며 스쳐 지나간다. 기차가 터널 속으로 들어갔다 금세 빠져나오기를 반복한다. 통리역에서 도계역에 이르기까지 터널은 모두 17개. 빛과 어둠의 공간을 교차하던 기차가 미인폭포 옆을 지나 통리협곡의 한가운데에 위치한 심포리역에서 교행을 위해 잠시 멈춘다.

그 옛날 심포리까지 기차를 타고 온 승객들은 객차가 쇠줄에 의해 끌려 올려지는 동안 인클라인 철도 옆으로 난 가파른 비탈길을 1㎞ 이상 걸어 올라야 했다. 사람과 짐을 지게에 싣고 오르내리는 짐꾼이 생겨나고 겨울에는 새끼줄 장수도 등장했다. 새끼줄은 눈길에 미끄러지지 않도록 신발에 칭칭 감아 아이젠 대용으로 안성맞춤이었다.

인클라인 철도와 스위치백 선로의 출발점인 심포리역에는 미인폭포 진입로 쪽에서 보면 은하철도 999 발사대를 연상시키는 녹슨 철로가 살짝 보인다. 기차가 산허리를 돌아 하늘로 솟아오르는 상상력을 자극하는 철로는 브레이크 고장 등에 대비해 기차를 대피시키는 대피선.

심포리역을 출발한 기차가 속도를 줄이더니 드디어 스위치백 철도 구간의 상부역인 흥전역에 진입한다. 스위치백(switchback)은 기차가 급경사 구간을 달리도록 지그재그 형태로 놓인 철길. 양쪽에 상부역과 하부역이 있고, 그 사이를 기차가 전진과 후진을 반복해 올라가거나 내려가는 산악철도의 백미로 꼽힌다.

기찻길은 흥전역 입구에서 내리막과 오르막 두 갈래로 갈라진다. 오르막은 상행선, 내리막은 하행선으로 반대방향 선로가 어깨를 나란히 하고 있다. 기차가 산중턱에 위치한 흥전역에서 후진으로 선로를 갈아타기 시작한다. 날카로운 쇠 마찰음이 허공에서 동심원을 그리다 병풍 같은 산에 가로막혀 메아리로 되돌아온다. 흥전역에서 스위치백 철도의 하부역인 나한정역까지는 1.5㎞. 차창 밖으로 도계읍 시가지와 산더미 같은 석탄 야적장이 한눈에 들어온다.

나한정역은 38번 국도와 가까워 흥전역보다 접근하기가 쉽다. 폐쇄를 앞둬 더욱 쓸쓸한 나한정역의 명물은 흥전역으로 가는 S자 모양의 단선 철로. 곡선미가 돋보이는 철로 옆으로는 3.3㎞ 떨어진 도계역을 연결하는 철로가 일직선으로 뻗어 있다.

과거로의 시간여행을 하듯 후진을 거듭하던 열차가 드디어 나한정역에서 선로를 바꿔 똑바로 달리기 시작한다. 차창 밖을 통해 해발고도가 낮아지는 풍경을 숨죽이며 지켜보던 승객들이 비로소 안도의 숨을 내쉰다. 통리역에서 나한정역까지 13.7㎞를 살얼음판 걷듯 조심조심 내려온 기차도 신이 난 듯 서서히 속도를 높인다.

오십천을 가운데 두고 38번 국도와 나란히 달리는 영동선은 한국의 그랜드 캐니언으로 불리는 통리협곡을 달린다. 왼쪽으로는 방금 내려온 스위치백 구간이 등고선을 그리며 통리재를 오르고, 오른쪽의 육백산 자락에는 도계탄광에서 캐낸 검은 석탄이 산더미처럼 쌓여져 있다.

석탄 싣는 화물열차가 즐비하게 늘어선 도계역에는 등록문화재로 지정된 급수탑과 기찻길이 산꼭대기까지 수직으로 뻗어 있는 광차용 인클라인이 눈길을 끈다. 급수탑은 증기기관차에 물을 보충해주던 시설이고, 광차용 인클라인은 갱도에서 캔 석탄을 선탄장까지 운반하는 탄광 설비.

증기기관차와 인클라인 철도에 이어 산악철도와 스위치백 철도마저 역사 속으로 사라질 운명에 처한 영동선 통리역∼도계역 철도가 마지막 겨울을 안타까워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