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김지현의 에로틱 칵테일

(26) 살고 싶은 男, 연애만 하고 싶은 男

행복을 만드는 사람들 2011. 2. 19. 19:41

(26) 살고 싶은 男, 연애만 하고 싶은 男

 

"나 아예 들어와서 살까?"

문득 그가 물었다. 그가 매일 우리 집에서 자기 시작한 지는 이미 몇 주 됐다. 밖에서 데이트를 한 날에는 자연스럽게 손 맞잡고 집으로 들어오고 약속이 있는 날은 볼일을 보고 나서 우리 집으로 온다. 그와 나 누가 먼저 그렇게 하자, 고 말한 적은 없다. 그냥 자연스럽게 그렇게 됐다. 그런 그가 '제대로' 함께 살자고 말하는 것이다. 나는 그에게 우리 집 열쇠를 주고, 그는 그의 몇 가지 짐을 우리 집으로 들여오게 될 것이다.

나는 뭐라 대답할지 몰라 당황했다. 그는 분명 좋은 남자다. 나를 많이 좋아하고, 나와 섹스하는 걸 좋아하고, 섹스할 때마다 거의 오르가슴을 느낀다. 이 정도면 속궁합이 아주 잘 맞는 편이다. 게다가 잘 때는 나를 꼭 품에 안고 잔다. 데리고 다니기 부끄럽지 않은 외모에, 항상 맛있는 걸 사주고 싶어하며, 잠버릇이 고약한 나에게 잔소리를 하지도 않는다. 술 마시고 밤늦게 들어오는 일도 없다. 그는 연애하기에 너무나 좋은 남자다.

그러나 나는 그와 함께 살고 싶지는 않다. 그는 평생 어머니가 차려주는 아침, 점심, 저녁을 꼬박꼬박 먹었던 남자요, 밥 먹을 때면 꼭 고기반찬이 있어야 하는 남자다. 설거지를 하고 나면 그릇을 엎어놓거나 싱크대 주변을 닦아야 한다는 것도 모르고, 샤워를 할 때마다 새 수건을 찾아서 쓴다. 물건을 쓰고 난 뒤에 제자리에 갖다놓는 법이 없고, 아침저녁 두 번씩 샤워를 하고 매번 속옷을 갈아입는다.

여자 집에 머리카락이 가득한 걸 이해 못 하고 와이셔츠 다리는 법을 모르며, 따로 손빨래 해야 하는 티셔츠를 주로 입는다. 나는 평일에는 절대 텔레비전을 켜지 않는데 그는 집에 들어오자 텔레비전을 켜고 몇 개 드라마는 꼭 챙겨서 본다.

나는 1시 이전에는 꼭 잠들어야 하고 그는 새벽 늦게까지 텔레비전을 보거나 컴퓨터로 만화를 즐겨 본다. 아침이면 나는 그 남자와 함께 출근하고 싶은데 그는 늦게까지 늦잠을 자고 싶어한다.

우리의 속궁합은 맞되, 우리의 일상이나 생활 패턴은 전혀 맞지 않는다.

내가 지금 그 남자와 함께 생활을 공유하는 건 매일 '같이 있고' 싶어서이지, '같이 살고' 싶어서는 아니다. 이 오묘한 차이를 도대체 그에게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감정은 맞출 수 있어도 삼십여 년간 살아온 방식을 맞추는 건 쉽지 않다. 사랑하지만 함께 있으면 숨막힌다는 건 내가 혼자인 것에 익숙해진 탓일까, 아니면 내가 그를 덜 사랑하기 때문일까, 혹은 함께 살 만한 남자는 정말 따로 있기 때문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