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한 취미생활 여행

구로구 수궁동

행복을 만드는 사람들 2011. 10. 18. 10:13

우리네 선조가 꾸리던 마을의 옛모습은 어떠했을까. 현대화를 겪으며 개력해진 도시에서 그 흔적을 더듬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개발의 가두리에 있었다 하더라도 마을의 전통은 헤실바실 부서져 왔다. 하지만 옛마을의 흔적을 좇는 여정은 오래전 책갈피에 껴놓은 단풍잎을 찾아낸 듯한 기쁨을 살그머니 놓고 간다. 

구로구 수궁동 지도 보기

궁이 있던 마을, 천혜의 지형 속 집성촌

서울의 서남단에 위치한 수궁동은 구로구에 속해있지만 북으로는 양천구, 서쪽으로는 부천시와 맞닿아있다. 수궁동은 온수동의 ‘수’와 궁동의 ‘궁’을 합쳐 생긴 이름이다. 경인로를 타고 오류고가를 넘으면 북쪽으로는 궁동, 서쪽에서는 온수동을 만난다. 지난 가을 수궁동에 처음 들렀을 때의 느낌은 퍽 인상적이었다. 남쪽을 제외한 마을 주변은 모두 산으로 둘러싸였고 인근에 높은 건물이라고는 보이지 않았다. 풍치지구로 지정돼 개발이 제한돼있고 건물을 올리더라도 7층 이상은 지을 수가 없다. 산에 에워싸여 야트막하고 소담한 마을이 들어선 모양이다. 실제 주민도 2만여 명에 불과하다.

 

이곳에서 서울의 몇 안 남은 집성촌을 찾아 나섰다. 먼저 궁동으로 향했다. 1963년 서울로 편입되기 전까지 경기도에 속했던 궁동은 ‘궁’이라는 이름처럼 정선옹주의 궁이 자리했던 곳이다. 조선선조 임금의 7녀인 정선옹주는 안동 권가로 출가해 이곳에서 터를 잡았다. 그 뒤 안동 권씨 가문은 400여 년 넘게 마을을 지켰다. 6.25 때 불타버린 정선옹주궁의 흔적은 현재 서서울생활과학고등학교에 서 있는 궁골 표지석으로 짐작할 수 있다.

 

궁골표지석 옆 산자락에 정선옹주와 안동 권씨 가문의 묘역이 있다. 이곳에 서면 궁골이 얼마나 천혜의 지형에 들어섰는지 쉽게 짐작이 간다. 마치 와룡산이 날개를 뻗어 양옆으로 감싸고 따스한 몸으로 달걀을 품는 모습이다. 묘역 바로 아래 저수지는 ‘배산임수’의 조건을 완성시킨다. 옛날에는 하늘에서만 볼 수 있다 하여 ‘천옥(天屋)’이라 불린 궁동에는 와룡산 왼쪽 줄기로 안동 권씨, 오른쪽 줄기인 청룡산으로는 전의 이씨 가문이 터를 잡고 살아왔다.

 

  • 1 온수골 옛길의 흔적이 온수동 기스락에 그대로 남아있다. <이윤정기자>
  • 2 옛 지도에서 수탄면을 보면 남(南)쪽을 제외한 마을주변이 산으로 둘러쌓여있다.<부평군읍지>

 

 

옛 주막거리가 연립주택 단지로

다시 지도를 들고 마을을 걷는다. 논두렁, 밭두렁을 따라 휘뚤휘뚤 나 있던 길의 흔적은 대부분 사라졌다. 들판에 넓은 도로가 뚫리고 산을 관통하는 터널은 양천구와 부천시 양방향으로 마을을 이어준다. 원래 마을길은 지금은 복개되어 보이지 않는 오류천을 따라 형성돼 있었다. 온수역 인근 동부제강 자리에는 예부터 중국사신과 우리나라 관리들이 제물포와 서울을 오가며 쉬어가던 ‘오류원’이 있었다. 당시의 주막거리는 이제 연립주택 단지와 온수산업단지가 됐다.

 

옛길의 흔적을 찾아 온수동으로 내려갔다. 온수동에서는 제주 고씨와 전주 이씨 등이 집성촌을 이루고 살았다. 현재 제주 고씨 6가구가 대를 잇고 있으며 아직 허물지 않은 고가(古家)도 몇 채 남아있다. 제주 고씨 영곡공파 17대손인 고상빈(58)씨와 함께 온수골 옛길을 걷는다. 마차가 지나던 흙길이 고스란히 남아있다. 고상빈씨는 “이 길을 마차길이라 불러요. 마차길 앞의 집은 250년 전 저희 문중이 온수골에 자리 잡으면서 지은 거죠. 지금은 사람이 살지 않아 폐가처럼 변했지만 예전에는 문중의 큰 제사를 지내던 온수골의 중심부였어요”라고 설명한다. 가옥을 빙 둘러선 가지나무와 뒷마당 자리에 남은 우물터, 서까래와 고방 등 옛 가옥의 정취는 감탄을 자아낸다.

 

온수동의 가옥은 공터에 들어선 것도 있지만 조상으로부터 물려받은 땅에 그대로 지어진 집도 많다. 안동 권씨 16대손 권창호(60)씨는 “조선시대에는 기와집을, 일제시대에는 양철집을 짓고 살다가 18년 전에 집을 헐고 새로 지었죠. 집은 신식이 됐지만 조상이 물려준 터에 그대로 살고 있는 셈입니다”라고 말한다. 전의 이씨 28대손 이경노(69)씨도 옛 집터에 다시 주택을 지어 살고 있다. 1360년대부터 이곳에 터를 잡은 전의 이가는 수궁동에서 가장 오랜 세월을 살아온 가문이기도 하다.

 

 

궁골, 터골, 배밀, 삭새 등 옛 지명 따라 걷는 수궁동


풍치지구로 묶여 개발이 제한돼 있었다고는 하지만 수궁동의 옛 모습을 되짚으려면 지도를 펼쳐 옛 지명을 불러내야 한다. 온천이 나온다는 ‘온수골’, 온수역의 북쪽 자락 ‘터골’, 터골과 궁동을 넘는 ‘삭새’, 와룡산 원각사 인근 ‘절골’, 원각사 아래 골짜기 논 ‘배밀’, 정선옹주 궁이 있던 ‘궁골’, 안동 권씨 집성촌 ‘양지말’, 전의 이씨 집성촌 ‘음지말’, 오류천변 장승이 서 있던 ‘장승배기’ 등 사라져가는 옛 이름은 푸근하고 친근하다. 마을에서는 옛 지명을 살려 지도를 그리고 있다. 올봄부터는 정선옹주 묘역을 중심으로 와룡산을 따라 산책로를 재정비해 공개한다.

 

마을 사람들은 전통을 지킬 수 있었던 이유에 대해 “개발이 안 돼서 그나마 마을을 지켜온 것도 있지만 각 가문마다 고유의 전통을 지키기 위해 애쓰며 살아왔다”고 말한다. 고상빈씨는 “아직 수궁동에는 농사를 짓는 가구가 남아있어요. 토박이 주민이 많다보니 이웃의 경조사에 함께 참여하죠”라고 말한다.

 

전의 이씨 가문은 세종대왕이 내려준 가훈을 현재까지 이어오며 소중히 지켜가고 있다. 수궁동 주민자치위원장이기도 한 권창호씨는 표지판 하나 제대로 세워져 있지 않은 정선옹주 묘역을 비롯해 마을의 구석구석을 옛 전통대로 살릴 수 있는 방안을 계획 중이다.

 

가는 길
서울에서 지하철 1, 7호선을 이용해 온수역에서 내리면 온수산업단지관리공단 및 온수연립주택단지가 나온다. 온수역이 위치한 곳 주변이 온수동, 동북쪽 방향에는 궁동이 자리했다. 온수동의 ‘수’와 궁동의 ‘궁’을 합쳐 ‘수궁동’이라 부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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